Home | 아사달 | 경제86 | 게시판 | Email 
서창녕은 아사달인터넷 정치학 취미생활 사진모음 링크 방명록
 
전공시험
        정치사상
        정치이론
        정치과정
        비교정치
        한국정치
        국제정치

석사논문
레포트모음
로체스터대학교


석사논문




제1장 서론


제1절 문제제기

지난 20-30년간에 걸쳐 한국은 근대화의 물결 속에서 급속한 산업화와 정치적 민주주의를 경험하였다. 한국은 박정희 정권에 의해 추진되기 시작한 근대화운동의 결과로 급격한 도시화와 산업화가 진행되었고 국민총생산량이 크게 늘어났으며 국민들의 교육수준이 전반적으로 높아졌다. 한국의 근대화와 더불어 사회의 계급구성도 달라졌다. 농업의 몰락으로 농민의 숫자가 줄어든 반면 수출지향적 공업화의 결과로 산업노동자의 숫자가 늘어났다. 농업과 공업의 비율이 역전되고 자본주의적 관계가 발전함과 더불어 이념적으로도 전통적인 농업사회의 도덕이나 윤리규범이 쇠퇴하고 서구적인 자유주의와 합리주의 사조가 널리 유포되었다.

한국사회의 전반적인 근대화 추세와 비교해 볼 때 한국정치의 민주화 수준은 상대적으로 뒤떨어져 있다. 사회경제적 발전이 정치적 민주화를 가져온다는 립셋(Seymour M. Lipset)의 가설과는 달리, 한국은 급속한 사회경제적 발전을 이룩하였지만 그것에 비례하여 정치적 민주화를 달성하지는 못하였다. 오히려 박정희 정권은 경제건설을 추진한다는 명목으로 정치적 민주화를 유보하거나 후퇴시키는 행위를 서슴지 않았다.

한국정치가 민주화되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한국정치의 민주화는 1987년 6월 민주화운동을 계기로 급속히 추진되기 시작하였으며, 1993년 군사정권이 막을 내리고 문민정권이 들어섬으로써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6.29선언으로 대통령 직선제 개헌이 받아들여짐으로써 법적, 제도적 측면에서 한국정치의 민주화가 크게 진전되었고, 문민정권이 출범하여 정권의 권위주의적 속성이 약화되고 선거, 정당, 의회의 자율적 기능이 활성화됨으로써 정치과정적 측면에서도 민주주의가 크게 진전되었다. 최근 한국정치의 민주화 추세는 일시적이고 부분적인 현상이 아니라 장기적이고 광범위한 경향이라는 점에서 1960년 4.19 직후의 상황과 차이점이 있다. 한국정치의 민주화는 사회경제적 발전의 단순한 반영물도 아니고 권력자의 시혜물도 아니다. 한국정치의 민주화는 민주를 염원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적극적인 노력과 희생의 대가이다.

최근 정치학 연구에서는 선거, 정당, 의회와 같은 정치과정에 관한 연구가 새롭게 활기를 띠기 시작하고 있다. 지난날 권위주의 정권하에서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던 정치과정에 관한 연구는 1980년대 후반 이후 한국정치의 민주화가 진행되고 선거, 정당, 의회의 기능이 활성화됨에 따라 새롭게 정치학의 중심적인 연구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정치에 관한 근래의 연구는 투표행태와 선거결과에 관한 분석, 선거운동의 구체적 과정과 실태에 관한 분석, 선거문화와 유권자의 정치의식에 관한 분석, 정당과 의회의 정책기능에 관한 분석 등 다양한 차원에서 전개되고 있다. 이러한 연구들은 실증적인 조사분석과 각종 통계자료들을 바탕으로 상당히 과학적이고 설득력 있는 결론을 제시하고 있다.

한국정치의 연구에서 많은 연구자들이 직면하는 문제는 미국이나 유럽과 달리 한국에서는 정치과정에서 정책적 요인이 차지하는 비중이 별로 크지 않다는 점이다. 한국의 정치과정에서는 정책적 요인보다는 비정책적 요인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이념적 동질성이나 정책의 합리성에 따라 정당이 조직되고 선거에서 유권자의 지지가 표현되지만, 한국에서는 이념이나 정책보다도 혈연, 지연, 학연에 기반을 둔 인맥과 사조직, 지역주의 등의 비정책적 요인이 중요한 정치행위를 결정하는 데 더 큰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제14대 대통령 선거에서 김영삼 후보는 자신의 출신지인 부산에서 72.6%, 경남에서 71.5%, 경북에서 63.6%의 지지를 얻고, 김대중 후보는 광주에서 95.1%, 전남에서 91.1%, 전북에서 88.0%의 지지를 얻는 등 지역주의적 투표성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난 반면, 두 후보의 정책적 차별성은 크게 부각되지 않았다. 또한 제13대 민정당 국회의원 중 박준규, 김윤환, 박철언 등 무려 15명이 노태우 대통령의 출신 고등학교인 경북고등학교 동창생들이었다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정당활동에서도 정책이나 이념의 동질성보다도 혈연, 지연, 학연과 같은 연줄을 기반으로 하여 인맥과 파벌이 형성되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한국정치에서 인맥과 지역주의는 매우 독특한 정치행태 가운데 하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까지 한국정치 분야에서 이 문제에 관한 연구는 활발히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최근 국회의원과 선거구민간의 비정책적 연계과정이나 한국정치의 지역균열 현상에 관한 연구논문들이 몇 편 발표되었으나, 전체적으로 볼 때 아직까지 이 분야에 관한 연구는 부족한 편이다. 특히 1980년대의 정치인맥에 관한 연구는 기자들이 작성한 몇 편의 저널리즘적인 글들을 제외하면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이 논문은 1980년대 한국정치의 인맥을 연구주제로 삼고자 한다.



제2절 연구대상 및 내용구성


이 논문에서는 후견인-수혜자 관계라는 분석틀을 적용하여 제5공화국의 하나회 인맥에 관해 살펴 보고자 한다. 후견인-수혜자 관계(patron-client relationship)는 권력, 재력, 명망을 가진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 물질적, 정신적 혜택을 베풀고 그 대가로 자발적인 충성과 지지를 얻어 내는 관계이다.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많은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한국의 주요 정치인맥은 후견인-수혜자 관계에 기반하여 형성되고 발전하였다. 이들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제5공화국의 하나회 인맥이다. 이 논문은 후견인-수혜자 관계의 분석틀에 입각하여, 제5공화국의 정치인맥이 본질에 있어서 하나회 중심의 군부인맥이었으며, 하나회 인맥이 정권을 장악할 수 있었던 내적 요인이 하나회 회원들끼리 서로 밀고 당겨 주는 호혜적 관계에 있었음을 주장하려 한다.

이 논문에서는 제5공화국의 하나회 인맥이 언제 어떻게 형성되었고, 어떠한 과정을 거쳐 정치권력을 장악하게 되었는가를 시간적 순서에 따라 구체적으로 살펴 보고자 한다. 따라서 이 논문은 시간적으로 1960년대 초 하나회 인맥이 형성되기 시작한 때로부터 1980년대 전반기 제5공화국이 수립되어 하나회 인맥이 사회 각계로 진출해 나간 때까지의 시기를 다루고자 한다. 그리고 이 논문은 집권여당의 정치인맥을 주된 연구대상으로 한다. 따라서 야당의 정치인맥이나 비정치적 분야의 인맥은 이 논문의 직접적인 연구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이 논문에 실린 각종 도표와 자료들은 주요 일간신문과 [신동아], [월간조선], [월간중앙] 등의 잡지에 실린 취재 및 인터뷰(interview) 기사들을 참고하여 재작성되었다. 각종 통계연감과 국회 조사 보고서 등도 객관적 사실을 확인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덧붙여 제14대 국회의원 총선을 맞아 황수익 교수의 지도 밑에 진행되었던 정치과정분석 강의와 그 때 제출되었던 각종 보고서들이 이 논문을 작성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이 논문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제1장 서론에 이어 제2장에서는 전반적인 분석의 틀을 제시한다. 먼저 이 논문에서 사용된 주요 용어들에 관한 엄밀한 개념정의를 시도한다. 다음으로 정치인맥을 학문적으로 분석하기 위한 이론적 틀로서 '후견인-수혜자 관계'라는 분석틀을 제시하고 실제 정치현실에 대한 설명력을 가질 수 있도록 모형화를 시도한다.

제3장에서는 하나회 인맥의 형성과정에 관해 살펴 본다. 하나회의 뿌리인 오성회가 생겨난 때로부터 1961년 육사생도들의 5.16 지지 시위, 1963년 하나회 결성, 1973년 윤필용 사건 등 주요 사건들을 살펴 본다. 이를 통해 하나회가 아래로는 정규육사출신 장교들의 엘리트 의식과 선배 장교들에 대한 불만에 기초하고, 위로는 박정희 대통령의 배려와 후원에 의존함으로써 강한 결속력을 지닌 비밀사조직으로 성장할 수 있었음을 주장한다.

제4장에서는 제5공화국의 정치인맥에 관해 살펴 본다.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이 사망한 후 12.12사건을 통해 군의 주도권을 잡은 신군부 세력이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진압, 국보위 설치, 민정당 창당 등을 통해 구정치세력들을 제거하고 하나회 중심의 새로운 정치인맥을 형성하는 과정을 살펴 본다. 이를 통해 5공인맥은 본질에 있어서 군 내 비밀사조직인 하나회의 연장선상에서 형성된 군부인맥이었음을 주장한다.

결론적으로 제5장에서는 인맥정치의 장단점을 지적하고 이 연구의 성과와 한계를 밝힌다.


◀이전 | 차례 | 다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