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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체스터대학교


석사논문




제5장 결론


제1절 인맥정치에 관한 평가

제5공화국의 정치인맥은 본질에 있어서 하나회 중심의 군부인맥이다.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많은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한국의 경우에도 국가권력의 핵심부를 장악한 세력은 재벌이 아니라 군부였다.

하나회는 1963년 전두환, 노태우 등 육사 11기 졸업생들에 의해 결성된 비밀사조직으로서 박정희 대통령의 후원을 받으며 성장해 온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엄격한 심사를 거쳐 비밀리에 가입된 이들은 이른바 '자리 물리기' 방식으로 육군본부, 수경사, 보안사 등 군 내 요직을 두루 장악함으로써 비정규육사 출신 선배 장교들의 힘을 견제할 수 있는 강력한 세력으로 떠올랐다. 하나회는 1979-80년 신군부 세력이 정치무대에 등장하는 과정에서 결정적 역할을 했다. 12.12쿠데타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진 장교들의 3분의 2가 하나회 회원이었으며, 광주민주화운동을 진압한 부대는 전두환, 노태우, 정호용 등 하나회 회원들끼리 자리 물리기를 해 오던 대표적 부대인 공수특전단이었다. 이들은 구시대 정치세력을 제거하고 새로운 정치질서를 마련하는 작업에서도 중심적 역할을 했다. 보안사의 허화평, 허삼수, 이학봉 등은 국보위 인선작업과 민정당 창당과정에 깊숙히 관여하였다. 하나회 인맥의 위세는 제5공화국의 출범과 더불어 최고조에 이르렀다. 이들은 제5공화국 정권하에서 서로 밀고 당겨 주는 후견인-수혜자 관계를 형성하고, 청와대, 행정부, 국회 및 정당, 군, 정부투자기관, 기업체, 연구단체 등 사회 각계로 진출하여 상층부와 요직을 차지하였다. 그 결과 군부세력을 중심으로 민간세력이 결합하여 "전두환-하나회-정규육사출신-전문관료.민간인"의 구조를 가진 거대한 동심원 구조가 형성되었다.

일반적으로 군부가 정치에 개입하는 원인으로는 군 내부적 요인과 사회정치적 요인을 지적할 수 있는데, 한국의 경우 군 내부적 요인이 더 강했다. 1979-80년 전두환을 중심으로 하는 하나회 인맥이 정치권력을 장악하게 된 배경에는 당시의 불투명한 사회정치적 상황도 하나의 요인으로 작용했지만, 군부 내 정규육사 출신 장교들과 비정규육사 출신 선배 장교들간의 세력다툼이라는 군 내부적 요인이 더 크게 작용했다.

군사쿠데타는 개인적 쿠데타, 파당적 쿠데타, 제도적 쿠데타의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개인적 쿠데타는 상대적으로 민간부문의 정치제도화 수준이 낮은 국가에서 몇몇 군 장교들의 개인적 야심에 의해 발생하는 쿠데타로서, 1966년 나이지리아 쿠데타의 사례처럼 아프리카 지역에서 자주 발생했다. 파당적 쿠데타는 군 내부에 엄격한 규율과 위계질서가 확립된 국가에서 군부 내 파벌집단간의 세력다툼에 의해 발생하는 쿠데타로서, 박정희의 5.16쿠데타와 전두환의 12.12쿠데타가 여기에 해당한다. 제도적 쿠데타는 잘 조직되고 우수한 교육을 받은 제도화된 군부집단이 민간부문에까지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일으킨 쿠데타로서, 브라질, 아르헨티나, 페루 등 라틴아메리카의 여러 나라들에서 많이 발생했다.

12.12사건은 하나회가 중심이 된 전형적인 파당적 쿠데타에 해당한다. 이 사건은 군부 내 정규육사 출신 장교들이 비정규육사 출신 선배 장교들과 세력다툼을 벌이는 과정에서 무력을 동원하여 상급 장교들을 제거한 하극상 사건이다. 이 쿠데타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군부 내에 하나회와 같이 엄격한 규율을 갖춘 비밀사조직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회 인맥은 큰형님인 전두환을 중심으로 형님-아우 관계로 맺어진 가부장제에 비유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박정희는 하나회를 낳고 길러 준 어버이에, 윤필용과 같이 하나회를 후원한 선배 장교들은 삼촌에 비유될 수 있다. 다른 비밀사조직들과 마찬가지로 이들 사이의 관계에서는 행정적 지시나 명령보다도 서로에 대한 신뢰와 의리가 강조되었다. 하나회는 지도력과 위계제 그리고 규율 있는 구성원들을 가지고 정치적 목적을 추구한 정치적 머신에 비유될 수 있다. 이들은 공공의 이익보다도 자기 그룹의 사적인 이익을 우선적으로 추구하였는데, 그 대표적인 사례가 각종 진급과 보직에서 하나회 회원들끼리 자리 물리기를 되풀이한 것이다. 하나회는 정규육사 출신 장교들로 구성된 일종의 군부 파벌에 비유될 수 있다. 이들은 정규 4년제 교육을 받은 엘리트라는 동질감과 선배 장교들 때문에 진급이 늦어지고 있다는 공통된 불만을 바탕으로 정규육사 출신 장교들을 단합시키고 비정규육사 출신 장교들에 대항해 배타적 집단이익을 추구하였다. 그 결과 12.12사건 직전에 군부는 정승화를 대표로 하는 상층과 전두환을 중심으로 하는 중하층으로 양분되었다. 하나회 인맥은 후견인-수혜자 관계에 의해 가장 잘 설명될 수 있다. 하나회는 육사 11기 선배들을 최상층으로 하고 각 기수별로 10-12명의 후배들이 망라된 후견인-수혜자 피라미드에 비유될 수 있다. 이 피라미드의 정점에 위치한 전두환은 자신을 추종하는 회원들에게 진급과 보직상의 특혜를 베풀고 그 대가로 자신과 조직에 대한 절대적 지지와 충성을 이끌어 내었다. 이들이 정권을 잡은 1980년대에는 하나회를 중심으로 각계각층의 민간정치세력들이 망라된 거대한 동심원 구조가 형성되었다.

인맥정치는 정치지도자와 그를 중심으로 한 인맥에 의해 주요한 정치적 결정이 내려지고 정치행위가 이루어지는 정치행태라고 정의할 수 있다. 제5공화국의 정치행태는 '하나회 중심의 군부인맥'에 의한 인맥정치였다.

인맥정치는 정치인들간의 유대관계를 공고한 것으로 만들어 줌으로써 안정된 정치공동체의 형성에 이바지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서로 비슷한 이념과 정책을 가진 사람들끼리 인맥을 형성하고 정치활동을 주도해 나감으로써 국정운영의 혼란을 최소화하고 일사불란한 통치행위를 펴 나갈 수 있다. 권력의 공백기에 정치인맥은 단합된 힘을 바탕으로 혼란된 정치상황을 헤치고 정국을 주도해 나감으로써 새로운 정치질서의 창출에 중심적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인맥정치는 민주적 절차와 제도를 경시하고 집단이기주의와 부정부패를 낳는 온상이 될 수 있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 중요한 의사의 결정이 사적인 자리에서 몇몇 사람들에 의해 은밀히 내려짐으로써 조직 내부의 민주적 절차가 파괴되고 공식적 조직체계가 약화될 수 있다. 또한 자기 인맥에 속하지 않은 다른 집단이나 조직들에 대해 배타적인 자세를 취함으로써 집단이기주의에 빠지기 쉽고 집단간 갈등과 대결을 불러오기 쉽다. 정치적 머신, 파벌 등과 마찬가지로 정치인맥은 부정부패를 낳는 구조적 요인이 될 수 있다.

실제로 제5공화국의 하나회 인맥은 한국정치의 민주화와 정치발전에 역행하는 많은 부작용을 일으켰다. 우선 군 내부에서 하나회 회원들끼리 보직을 주고받는 불공정한 인사관행을 되풀이함으로써 군의 사기를 저하시킨 점을 지적할 수 있다. 또한 12.12사건과 같이 군의 정상적인 지휘계통을 무시하고 불법적인 방법으로 무력을 동원하여 하급자가 상급자를 체포하는 좋지 못한 전례를 남겼다. 하나회 인맥은 제5공화국의 창출과 운영 과정에서 군 출신 인사들을 중용하고 민간정치세력들을 억압함으로써 군부독재라는 비판을 받았다. 광주민주화운동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2,000여명의 민간인들이 희생되었으며, 국보위에 의해 주도된 개혁작업과 사회정화활동에 의해 김종필, 김영삼, 김대중 등 3김 세력이 정치무대에서 사라지고 약 8,600여명의 공직자가 물러났다. 이들은 제5공화국 정권하에서 온갖 부정부패를 일삼았다. 일해재단, 새세대심장재단, 새마을성금, 평화의 댐 건설 등 이들은 갖가지 명목으로 거액의 기부금을 마련하고 개인적으로 유용하였다. 전기환, 전경환, 이규동, 장영자 등 전두환 친인척들의 비리행위도 극심했다.

정치분야에서 인맥이 없을 수 없다. 동서고금의 모든 정치체제에서 인맥이 형성되지 않았던 때를 찾아 보기는 매우 어렵다. 사회주의 국가에서도 정치지도자를 중심으로 인맥이 형성되는 경우를 흔히 찾아 볼 수 있다. 정치와 인맥은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 있다. 인맥정치는 자기 인맥에 속한 사람들끼리는 잘 뭉치고 강한 힘을 발휘함으로써 안정된 정치공동체를 형성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지만, 반면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는 배타적 자세를 취하는 등 민주적 절차와 제도를 경시하고 집단이기주의와 부정부패를 낳는 구조적 요인이 될 수 있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



제2절 이 연구의 성과와 한계


이 논문은 후견인-수혜자 관계의 분석틀을 적용하여 제5공화국의 하나회 인맥을 연구한 글이다. 이 논문에서는 제5공화국의 정치인맥이 본질에 있어서 하나회 중심의 군부인맥이었음을 주장하고, 그 근거로서 하나회의 형성과 발전과정에 관한 구체적 자료들을 발굴하여 제시하였다. 또한 하나회 인맥이 정권을 장악할 수 있었던 내적 요인을 회원들끼리 서로 밀고 당겨 주는 호혜적 관계에서 찾고, 이를 후견인-수혜자 관계의 분석틀에서 설명할 수 있음을 보였다.

이 논문은 정치학이 한국의 정치현실을 분석대상으로 삼아야 하며, 추상적인 정치이론을 구체적인 정치현실에 접목시켜야 한다는 생각에 기반하여 작성되었다. 지금까지 한국의 정치학계는 미국식 정치이론을 무분별하게 수용하거나 혹은 그것에 대한 대응으로 제3세계와 사회주의 국가의 정치이론을 받아들이는 경향을 보여 왔다. 한국식 정치이론이 독자적으로 마련되지 못한 상황에서 외국의 좋은 경험과 이론을 받아들이는 것은 한국정치학의 발전을 위해서 매우 좋은 일이다. 그러나 아무리 훌륭한 정치이론이라 하더라도 한국의 정치현실을 실사구시적 관점에서 과학적으로 분석해 내지 못한다면 그 이론의 가치는 크지 않을 것이다.

이 논문은 흩어져 있던 하나회 관련 자료들을 최대한 수집하여 일정한 체계에 맞춰 재배열함으로써 자료발굴과 재해석의 측면에서 나름대로 의의를 가지고 있다. 또한 이를 통해 후견인-수혜자 관계에 관한 일반적 정치이론을 발전시키는 데에도 작으나마 이바지하였다. 후견인-수혜자 관계의 분석틀을 적용하여 동남아시아의 정치변동을 연구한 스코트(James C. Scott)의 논문과 마찬가지로, 이 글도 위의 분석틀을 적용하여 한국의 하나회 인맥을 연구한 논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논문은 하나회와 관련된 자료들을 인터뷰와 같은 직접적 방법을 통해 구하지 못하고 주로 잡지와 신문에 실린 간접 자료들을 이용했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또한 연구자의 능력 부족으로 후견인-수혜자 관계에 관한 더 많은 학자들의 연구성과들을 검토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그러나 이 논문은 하나회의 형성과정과 제5공화국 정권하에서 하나회의 위상을 이해하기 위한 체계적인 자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끝으로 하나회 인맥과 '티케이'(T. K.) 인맥을 비교하여 양자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살펴 보는 것과 문민정부의 출범으로 하나회 중심의 군부인맥이 쇠퇴해 가는 과정을 살펴 보는 것 등이 앞으로 남은 연구과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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