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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치에서 군부인맥의 형성과 쇠퇴
(서울대학원신문)

국의 군부인맥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은 '하나회' 인맥이다. 하나회는 1963년 전두환, 노태우 등 육사 11기 졸업생들이 결성한 비밀사조직으로서, 1979년 12.12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이후 1980년대의 한국정치를 좌지우지하였다. 지난 수십년간의 한국정치는 군부정치였으며, 군부 중에서도 특히 하나회 인맥에 의한 정치였다고 요약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하나회 인맥이 어떻게 형성되었으며 국민들의 민주의식이 성장함에 따라 어떻게 쇠퇴해 가는가에 관해 개략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나회의 뿌리는 전두환이 육사 생도 시절에 결성한 '오성회'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성회는 전두환, 노태우, 김복동, 최성택, 백운택 등 다섯 사람이 장래 장군이 되기를 꿈꾸며 만든 스무살 청년들의 친목써클이었다. 그 후 회원이 늘어나 칠성회로 확대되었고, 이후 육사 11기 텐 멤버(ten member)로 발전했다. 이들은 강한 엘리트 의식과 선배 장교들에 대한 불만을 기초로 정규육사 출신들끼리 단합함으로써 각종 승진과 보직 등에서 자신들의 배타적 이익을 추구하려고 하였는데, 이것이 하나회를 결성한 동기 중의 하나가 되었다.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이 그룹은 1961년 박정희의 5.16쿠데타를 지지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이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함으로써, 박정희와 후견인-수혜자 관계(patron-client relationship)라는 특별한 호혜적 관계를 형성하고 이후 최고회의 의장 비서실로 진출하는 등 보직과 진급에서 특별 배려를 받았다.

1979년 10.26사건으로 박정희가 사망하자 전두환과 그의 사조직 하나회는 불법적인 방법으로 12.12쿠데타를 감행하고 정권을 장악하였다. 이로써 한국정치는 문민정부의 출범이 아니라, 박정희의 지원을 받으며 성장한 배타적 군부인맥인 하나회에 의해 또 다른 군사정권 수립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전두환 중심의 신군부 세력은 계엄철폐와 민주화를 요구하는 광주민주화운동을 강제 진압하는 과정에서 2,000여명의 민간인의 생명을 앗아갔으며, 국보위를 발족시켜 행정부와 국영기업체의 임직원 등 8,601명을 공직에서 물러나게 하고, 3김 세력을 제거하였으며, 3만 8,259명을 군부대 순화교육 대상자로 분류하여 가혹한 삼청교육을 받게 하였다. 제5공화국의 정치인맥은 본질에 있어서 '하나회 중심의 군부인맥'이었다. 이들은 육군참모총장, 보안사령관, 수도방위사령관 등 군부의 핵심요직을 장악하였고 청와대, 행정부, 국회, 정부투자기관, 기업체 등 사회 각계로 진출하였다.

1987년 6월민주화운동으로 전두환의 5공인맥이 붕괴되고 노태우 중심의 6공인맥이 형성되었다. 6공인맥은 흔히 'T. K.인맥'으로 지칭된다. 노태우는 군부에 대해서는 하나회 회원 중에서도 그가 9공수여단장과 9사단장 시절 자신의 휘하에서 근무한 장교들을 주축으로 '9.9인맥'을 형성하였고, 정계에서는 군 출신 인사들을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박준규, 김윤환, 박철언, 문희갑 등 경북고 출신 민간정치인들을 중용함으로써 군부독재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고자 하였다. 그러나 6공인맥은 5공인맥을 청산하고 민간정치인들을 요직에 등용했음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자신을 포함한 핵심요직의 경우 여전히 군 출신 인사들이 차지했다는 점에서 하나회 인맥의 연장선상에 위치한 군부인맥이었다. 노태우의 9.9인맥과 경북고 인맥의 '이중적 인맥구조'는 군사정권이 문민정권으로 이행해 가는 과도기에 위치한 혼합적 성격을 띠고 있다.

1993년 문민정부가 출범함으로써 하나회 중심의 군부인맥은 급격히 쇠퇴하고 있다. 김영삼은 대통령 취임 직후 최세창, 김진영 등 하나회 인맥과 박준규, 박철언 등 경북고 인맥을 제거하고 최형우, 김덕룡 등 민간정치인들을 중용하는 인사조치를 단행하였다. 김영삼 정권은 군부를 반대하고 민주화를 염원하는 국민여론의 힘을 바탕으로 군부인맥을 제거하고 문민시대에 걸맞는 새로운 정치인맥을 형성해 나가고 있다.

국정치에서 군부인맥의 형성과 쇠퇴에 영향을 미친 요인으로는, 군 내부적 요인으로 파벌집단의 존재 및 결속 정도와 외부적 요인으로 국민들의 민주정치역량의 성숙 정도의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1960년대 초 박정희의 후원을 받아 비밀리에 성장한 하나회 세력은 1980년대 한국정치를 좌지우지하는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하였으나, 국민들의 민주정치의식이 성숙하고 군사정권 퇴진과 민간민주정부의 출현을 바라는 광범위한 요구가 분출되자 더 이상 지탱하지 못하고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다. 전두환의 5공인맥이 전형적인 군부인맥에 해당한다면, 노태우의 6공인맥은 군부인맥과 민간인맥이 절충된 과도기적 성격이 강하고, 김영삼의 문민정권 하에서 새롭게 형성되고 있는 정치인맥은 대체적으로 보아 민간정치인맥이라고 할 수 있다. 비록 아직까지도 군부인맥이 잔존하면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는 있지만, 한국정치의 민주화 추세에 비추어 볼 때 과거와 같은 군부의 정치개입은 더 이상 재현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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