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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사논문




제4장 제2절 하나회 인맥의 각계 진출


(1) 하나회 인맥의 군부 장악

1980년대에 들어와 하나회 인맥은 군부와 사회 각계각층으로 진출했다. 하나회 인맥은 군부를 장악하기 위해 두 가지 방법을 사용했다. 하나는 육군참모총장, 보안사령관, 수도방위사령관 등 군부의 상층과 요직을 하나회 인맥으로 채우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정규육사 출신 장교들을 대상으로 하나회의 후신인 '만나회'와 '알자회' 등을 조직하고 후원하는 것이었다.

하나회 인맥의 이른바 '자리 물리기' 관행은 제5공화국에 들어와 최고조에 달했다. <표 4-6>과 같이 역대 육군참모총장의 경우, 1983년 하나회 출신 중 처음으로 정호용이 이 자리를 맡은 이후 박희도(朴熙道), 이종구(李鍾九), 이진삼(李鎭三), 김진영(金振永) 등 하나회 출신 장교들끼리 자리 물리기를 되풀이하였다.

[ 표 4-6 ] 역대 육군참모총장

성 명 재 임 기 간 육 사 하나회
25 정호용 83년 12월-85년 12월 11기
26 박희도 85년 12월-88년 6월 12기
27 이종구 88년 6월-90년 6월 14기
28 이진삼 90년 6월-91년 11월 15기
29 김진영 91년 11월-93년 3월 17기


이들의 자리 물리기 관행은 보안사령관, 수도방위사령관 등 핵심요직의 경우에는 더욱 심하게 나타났다. <표 4-7>과 같이 1980년 이후 역대 보안사령관 9명 중 전원이 하나회 출신이었다. 윤석양 사건을 계기로 보안사가 기무사로 이름을 바꾼 이후에도 기무사령관 자리에는 하나회 출신인 서완수(徐完秀)가 임명되었다. <표 4-8>과 같이 역대 수도방위사령관의 경우에도 예외없이 100% 하나회 출신 장군들이 임명되었다. 1979년 12.12사건 때 장태완 수도경비사령관을 연행, 해임하고 노태우가 그 자리를 맡았으며, 80년부터 81년까지는 육사 12기의 박세직(朴世直)이 맡았다. 81년부터 수도방위사령부로 이름을 고친 후에도 최세창(崔世昌), 이종구(李鍾九), 고명승(高明昇), 권병식(權丙植), 김진영(金振永), 구창회(具昌會), 김진선(金鎭渲), 안병호(安秉浩) 등 8명의 수방사령관 전원이 하나회 출신이었다.

[ 표 4-7 ] 역대 보안사령관

성 명 재 임 기 간 육 사 하나회
기무 전두환 79년 2월-80년 8월 11기
기무 노태우 80년 8월-81년 7월 11기
기무 박준병 81년 7월-84년 7월 12기
기무 안필준 84년 7월-85년 6월 12기
기무 이종구 85년 6월-86년 7월 14기
기무 고명승 86년 7월-87년 12월 15기
기무 최평욱 87년 12월-88년 12월 16기
기무 조남풍 88년 12월-90년 10월 18기
기무 구창회 90년 10월-91년 12월 18기
기무 서완수 91년 12월-93년 3월 19기


[ 표 4-8 ] 역대 수도방위사령관


성 명 재 임 기 간 육 사 하나회
수경 노태우 79년 월-80년 8월 11기
수경 박세직 80년 8월-81년 8월 12기
1 최세창 81년 8월-83년 6월 13기
2 이종구 83년 6월-85년 5월 14기
3 고명승 85년 5월-86년 7월 15기
4 권병식 86년 7월-87년 12월 15기
5 김진영 87년 12월-89년 4월 17기
6 구창회 89년 4월-90년 10월 18기
7 김진선 90년 10월-91년 12월 19기
8 안병호 91년 12월-93년 4월 20기


하나회 인맥은 군부 내에서 '만나회'와 '알자회'를 조직함으로써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만나회는 육사 21기에서 33기까지 각 기수별로 12명씩 선발하여 비밀리에 조직된 사조직이며, 알자회는 육사 34기부터 43기까지 동일한 방식으로 조직된 사조직이다. 이 두 조직은 구성방식에서 각 기수별로 10-12명씩 선발한다는 점, 운영방식에서 철저한 비밀유지를 강조한다는 점, 그리고 자기들끼리 각종 보직을 주고받는 등 자리 물리기 관행을 되풀이하고 있다는 점 등에서 하나회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강창성은 이 두 조직이 하나회의 후신으로서, 이름만 달리 한 조직이라고 보았다.

[ 표 4-9 ]는 육사 20기에서 36기까지, [ 표 4-10 ]은 육사 21기에서 26기까지 하나회(엄밀히 말해 만나회) 회원의 명단이다.

[ 표 4-9 ] 육사 20-36기 하나회 회원 명단

20기 김중배, 김길부, 김무웅, 안광열, 허정일, 장호경, 이현부
21기 이중석, 최승우, 표순배, 이명인, 전영진, 강창남, 신윤희
22기 최기홍, 유효일, 유회국, 신양호, 오형근, 박범무, 권기대
23기 손수태, 정정택, 박영일, 김영철, 서중일, 김현수, 오준의
24기 권중원, 민형국, 홍한수, 윤영정, 강영욱, 유보선, 채문기
25기 안광찬, 강진하, 이상세, 이상선, 임인창, 박석조, 장세영, 권경석, 진병국, 강창의
26기 이상희, 김익성, 임문택, 허용문, 오현구, 이기영, 안대환, 최홍규
27기 서삼섭, 제정관, 김부영, 김준섭, 한광문, 김용석, 신용순, 이해호
28기 김진황, 안병용, 임종국, 김명길, 김선홍, 박홍열, 이채인, 이영우, 권영욱
29기 박항규, 이명구, 최득묵, 홍원기, 한동원, 강대구, 조성호, 나병태, 정두진
30기 김정근, 김용기, 하형규, 조윤기, 이현중, 방정환, 권행근, 김덕곤
31기 윤희만, 이진우, 최종대, 임치규, 김용수, 한성동, 이환준
32기 안학승, 차철이, 신경철, 최진학, 이기원, 한기엽, 이명희, 김선도,이남호, 김동화, 허 육
33기 김경규, 김일수, 박영목, 김형원, 황인뢰, 김동화, 이중언, 민병달,박경용, 정명도, 임형민
34기 이해평, 김정국, 김홍식, 노정수, 권오성, 김형배, 이윤규, 박주현
35기 송영철, 신동혁, 정길현, 유현국, 박재두, 전중세, 이상민, 남인우
36기 김종업, 김용빈, 김종민, 김현집, 장창목, 최계명, 오 명

(백승도 대령 주장, 1993년 4월 14일)

[ 표 4-10 ] 육사 21-26기 하나회 회원 명단


육 사 성 명 직 책 계 급 출신지
21기 최승우 육본 인사참모부 소장 충남
표순배 3군사관학교장 소장 충북
강창남 대통령 경호실 (중령)  
홍순룡 아랍에미리트 대사 (대령) 서울
이충석 합참 작전부장 소장 서울
여명현 2군 참모장 소장 전북
전영진 국방부 인사국장 소장 강원
22기 유효일 25사단장 소장 서울
박범무 정보본부 해외정보부 차장 준장 충북
최기홍 56사단장 소장 경북
유회국 21사단장 소장 서울
신양호 국방부 지휘통제실장 소장 서울
권기대 부대 관리관 (준장)  
오형근 작전참모부 차장 소장 강원
23기 손수태 30사단장 소장 경북
정정택 수도기계화사단장 소장 경북
길영철 사단장 소장 충남
박영일 사단장 소장 서울
오주의 사단장 소장 경북
24기 민병국 육군 본부사령 준장 충북
홍한수 육본 작전참모부 처장 준장 경묵
권중원 국방부장관 보좌관 준장 경묵
윤영정 1군 작전처장 준장 전북
강영욱 육본 작전참모부 처장 준장 전북
유보선 한미연합사 작전처장 준장  
채문기 육군 범죄수사단장 준장  
25기 황진하 국방무 정책기획실 차장 준장 충남
안광찬 합참 준장
진병국 3공수특전여단장 준장
이상선 군수본부 근무 준장
강창회 국회의원 중령
이상세 욱본PX복지단장 준장
장세영 기무사  
권경석   준장
박석조 9공수여단장 준장
유수재 기갑여단장 준장
26기 임문택 군 사령부 참모 준장  
이상학 육군참모총장 비서실장 준장
김익성   준장
이기영 육본 대령
최홍규 국방부 시설국 대령

(괄호 속의 계급은 예편자, 나머지는 1992년 기준 계급)

전두환은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 군 내 사조직이 이익집단으로 변질되고 장교들 사이에 위화감을 조성할 우려가 있다는 비판을 의식하여, 1981년 경호실장을 통해 하나회를 해체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러나 하나회는 해체되지 않았다. 6공화국 때도 노태우 대통령은 세 번이나 하나회를 해체하도록 지시했으나, 완전히 해체되지 않고 명맥을 유지해 왔다.

하나회 인맥은 한편으로 군 상층부와 요직을 장악하고 다른 한편으로 만나회, 알자회 등을 조직하는 방식으로 1980년대 한국 군부를 장악하였다.



(2) 하나회 인맥의 사회 진출


제5공화국에 들어와 하나회 출신 인사들은 사회 각계로 진출했다. 육사 11기에서 20기까지 경력이 밝혀진 88명의 하나회 회원들을 중복을 허용하여 분야별로 나누어 보면, 군부가 35명으로 가장 많고, 국회 및 정당 23명, 행정부 20명, 정부투자기관 19명, 청와대 12명, 기업체 11명, 사회단체 및 연구소 7명의 순으로 나타나고 있다. 특징적인 것은 이들이 경제기획원, 재무부, 한국은행 등 경제분야와 사법고시를 합격해야 하는 법조계에는 한 명도 진출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반면 이들은 군, 청와대, 정보기관 등 정권의 근간(根幹)을 이루는 곳에 집중적으로 포진해 있으며, 국회와 민정당에도 많이 진출했다.

[ 표 4-11 ] 하나회 인맥의 사회 진출 현황

청와대 전두환(대통령), 노태우(대통령), 장세동(경호실장, 안기부장), 안현태(경호실장), 정동호(경호실장), 이현우(경호실장), 성환옥(경호실차장, 감사원사무총장), 안교덕(민정수석비서관), 정순덕(정무제1수석비서관), 허화평(정무수석비서관), 허삼수(사정수석비서관), 이학봉(민정수석비서관)
행정부 노태우(내무장관, 체육부장관), 정호용(내무장관, 국방장관), 안필준(보사부장관), 장기오(총무처장관), 정동철(노동부차관), 최세창(국방장관), 이우재(체신부장관), 이춘구(내무장관), 이종구(국방장관), 이진삼(체육청소년부장관), 장홍렬(조달청장), 이대희(병무청장), 최평욱(철도청장, 산림청장), 박세직(체육부장관, 안기부장, 서울시장), 안무혁(국세청장, 안기부장)
외무대사 노정기(주미공사, 주필리핀대사), 최웅(주폴란드대사), 나중배(주사우디대사), 박태진(주요르단대사), 김상구(주호주대사)
국회정당 전두환(총재), 노태우(대표위원, 총재), 권익현(사무총장, 대표위원), 오한구(내무위원장), 배명국(건설위원장, 상공위원장), 이춘구(사무총장, 대통령선거대책본부장), 김상구(국회교체위 원장), 정순덕(사무총장, 재무위원장), 안무혁(국회의원), 윤태균(국회의원), 정호용(국회의원), 김복동(국회의원), 박세직(국회의원), 배명국(국회의원), 이춘구(국회의원), 정동호(국회의원), 신재기(국회의원), 허삼수(국회의원), 박준병(국회의원), 안교덕(국회의원), 이우재(국회의원), 이학봉(국회의원), 고명승(지구당 위원장)
전두환(보안사령관), 노태우(보안사령관, 수경사령관), 정호용(특전사령관, 육참총장), 김복동(육사교장), 박희도(특전사령관, 육참총장), 박준병(보안사령관), 박세직(수경사령관), 안필준(보안사령관), 장기오(공수여단장), 황인수(육사교장), 최웅(합참본부장), 최문규(육사교장), 최세창(합참의장), 정진태(한군미연합사부사령관), 이종구(수방사령관, 보안사령관, 육참총장), 이진삼(육참총장), 고명승(보안사령관), 나중배(한미연합사부사령관), 권병식(수방사령관), 민병돈(특전사령관, 육사교장), 최평욱(보안사령관), 송응섭(합참제1차장), 신말업(참모차장), 정만길(국방대학원장), 김진영(수방사령관,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육참총장), 이문석(특전사령관, 1군사령관), 조남풍(보안사령관, 교육사령관), 구창회(3군사령관, 수방사령관, 보안사령관), 성환옥(육본헌병감), 김정헌(육사교장), 김재창(합참작전실장), 서완수(기무사령관), 김진선(수방사령관), 안병호(수방사령관), 김무웅(한미연합사)
정부투자기관 최성택(석유개발공사사장), 김상구(석유개발공사이사), 최문규(석유개발공사이사장), 안교덕(농업개발공사사장), 김복동(광업진흥공사사장), 최세창(광업진흥공사사장), 정만길(광업진흥공사사장), 안필준(석탄공사사장), 장기오(근로복지공사 이사장), 정동철(한국산업안전공단이사장), 정동호(한국도로공사사장), 권병식(한국도로공사사장), 조명기(지하철공사감사), 권영휘(창원기계공단이사장), 박정기(한국중공업사장, 한국전력사장), 정도영(성업공사사장), 신우식(관광공사감사), 강자화(군인공제회관리이사), 허청일(기계공업진흥회회장)
기업체 손영길(동주산업회장), 안교덕(정우개발사장), 권익현(삼성정밀전무), 정동철(호텔신라사장), 신재기(한국강업사장), 우경윤(덕평골프장사장), 박종남(새서울종합용역대표), 박정기(한덕생명보험회장, 정우개발사장), 장기하(진로사장), 이한종(정우개발사장), 노석호(삼성항공부사장, 삼성중공업부사장)
사회단체연구소 김복동(국제문화연구소회장), 정동철(한국문화진흥사장), 배명국(지역개발연구소이사장), 안무혁(한국발전연구원이사), 정도영(자유총연맹사무국장), 허화평(현대사회연구소장)
학계 이철희(숭실대교수)

하나회 출신 인사들은 전두환 대통령을 최고정점으로 하는 중층적인 후견인-수혜자 관계를 형성하고 서로 밀고 당겨 주면서 자리 물리기 방식으로 사회 각 분야의 상층부와 핵심부를 차지하였다. 대통령 경호실장의 경우 장세동(張世東), 안현태(安賢泰), 정동호(鄭東鎬), 이현우(李賢雨) 등 4명이, 안기부장의 경우 3대 장세동, 4대 안무혁, 6대 박세직 등 3명이, 대표적인 정부투자기관인 광업진흥공사 사장의 경우에는 5대 김복동, 7대 최세창, 8대 정만길(丁萬吉) 등 하나회 출신 인사들이 자리 물리기 관행을 되풀이하였다.

(3) 전두환 중심의 동심원

전두환 중심의 하나회 세력이 커지자 정규육사 출신들뿐만 아니라 전문관료, 정치인, 기업인, 언론인, 교수 등 각계각층 인사들이 권력의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그림 4-4>와 같이 이들은 중심에 위치한 전두환과의 정치적 거리가 가까운 순서에 따라 "전두환-하나회-정규육사출신-전문관료.민간인"의 순서로 복합적인 동심원 구조를 형성하였다.

동심원의 중심에는 전두환이 위치해 있다. 그는 1979년 보안사령관, 합동수사본부장을 역임하고 12.12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하였으며, 1980년 5월 31일 국보위 상임위원장을 거쳐, 9월 1일 잠실체육관에서 제11대 대통령으로 취임하였다. 그는 하나회의 회장이고, 정규육사 출신 장교들의 리더(leader)이며, 제5공화국의 대통령으로서, 여러 개의 동심원을 하나로 결합시키는 중심의 역할을 하고 있다.

첫번째 동심원에는 하나회 회원인 노태우, 정호용 등이 위치해 있다. 노태우와 정호용은 육사 11기 하나회 창립 멤버들로서 1980년 5월에 설치된 국보위에서 상임위원을 역임한 공통의 경력을 가지고 있다. 노태우는 81년 대장으로 예편하여 정무 제2장관과 초대 체육부 장관, 내무장관을 역임하고 민정당 대표위원을 거쳐 제13대 대통령을 역임했다. 정호용은 83년 육군참모총장을 지내고 85년 대장으로 예편하여 내무장관, 국방장관을 역임했으며 현재 민자당 국회의원으로 있다. 이밖에 하나회 회원으로서, 1979-80년 당시 보안사에서 근무하며 전두환 보안사령관을 가까이에서 보필한 정도영(鄭棹永) 보안처장, 허삼수 인사처장, 허화평 비서실장, 이학봉 대공처장 등이 첫번째 동심원에 속한다.

두번째 동심원에는 정규육사 출신인 권정달, 이종찬 등이 위치해 있다. 이들은 하나회 회원은 아니지만 보안사와 중앙정보부에서 근무하면서 전두환과 인간적으로 가깝게 지낸 공통의 경력을 가지고 있다. 권정달은 육사 15기로서, 1979년 보안사 정보처장으로 있으면서 보안사령관 전두환의 신임을 얻었다. 그는 1980년 준장으로 예편하여 국보위 내무분과위원을 거쳐 이종찬과 함께 민정당 창당작업을 주도하였으며, 제11-12대 국회의원과 민정당 사무총장을 지냈다. 이종찬은 육사 16기로서 1979-80년 당시 중앙정보부 해외정보국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4월 14일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중앙정보부장 서리를 겸임하게 되면서 육사 출신이라는 점이 높이 평가되어 전두환을 가까이에서 접하게 되었다. 그는 6월 1일자로 단행된 중앙정보부 간부요원 300명 숙정작업에 주도적으로 나서서 과거의 동료들로부터 사표를 받아 냄으로써 전두환의 신임을 얻었으며, 이후 민정당 사무총장 등을 역임했다.

세번째 동심원에는 전문관료 출신인 박철언, 금진호, 문희갑 등이 위치해 있다. 박철언은 경북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사법고시에 합격하여 부산지검 검사, 서울지검 검사 등 직업검사로 활동하던 법조계 인물로서, 친척인 노태우의 추천으로 국보위 법사위원으로 정계에 입문하였다. 금진호는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미 캘리포니아 주립대 행정대학원을 수료하였으며, 총무처, 상공부, 동력자원부 등에서 근무하던 전문관료로서, 마찬가지로 친척인 노태우의 추천으로 국보위 상공자원분과 위원으로 정계에 입문하였다. 문희갑은 서울대 행정대학원을 졸업하고 미 테네시 주립대학원을 수료하였으며, 경제기획원, 국방부 등에서 예산편성을 담당하던 전문관료로서, 국보위 운영위원으로 정계에 입문하였다. 이들은 군 출신은 아니지만 군부 핵심인물의 추천을 받아 국보위에 참여했으며, 학벌이 좋고 오랜 경험을 쌓은 전문관료로서 실무책임을 담당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 표 4-12 ] 제5공화국 창출에 참여한 언론인

성 명 당시직책 이후주요경력
김용태 조선일보 편집국장 국회의원, 민정당 대변인
최병렬 조선일보 편집부국장 국회의원, 민정당 국책연구소 부소장
이웅희 동아일보 편집국장 대통령 비서실 수석비서관, 문공부 장관
박경석 동아일보 정치부장 민정당 대변인, 중앙집행위원, 국회의원
이진희 서울신문 주필 입법회의 의원, 문공부 장관
조남희 중앙일보 정치부장 국회의원, 민정당 원내부총무
심명보 한국일보 편집부국장 국회의원, 민정당 대변인, 총재 비서실장


신군부의 정권 창출 과정에는 정치인, 행정관료, 언론인, 종교인, 교수 등 각계각층 인사들이 참여하였다. 이들 중에는 박철언, 금진호, 문희갑 등과 같이 새롭게 정계에 입문하여 이후 요직으로 진출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장덕진 등과 같이 구(舊)정계 인사 중 5공화국 초기에 참여했다가 이후 정부기구 축소개편 때 관직에서 물러난 사람들도 있었다. 5공화국 초기에는 <표 4-12>와 같이 특히 언론인들이 정권 창출 과정에 많이 참여하였다. 김용태, 최병렬, 이웅희, 박경석, 이진희, 조남희, 심명보 등 다수의 언론인들이 신군부 세력을 지지하였고, 그 대가로 국회의원, 장관 등 요직에 등용되었다. 전두환 중심의 신군부 세력은 정치인, 행정관료, 언론인 등 민간부문의 협조와 지지를 이끌어 냄으로써 유신정권 붕괴 이후 생겨난 권력의 공백기를 메우고 새로운 정치질서를 수립할 수 있었다.

제5공화국의 정치인맥은 본질에 있어서 '하나회 중심의 군부인맥'이다. 물론 5공화국 인맥에는 박철언, 금진호, 문희갑 등 전문관료와 민간정치인들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권력의 중심부로 갈수록 권정달, 이종찬 등 정규육사 출신 인사들이 실권을 장악하고 있으며, 최상층에는 전두환, 노태우, 정호용 등 하나회 출신 인사들이 위치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5공화국의 정치인맥은 전두환과 하나회를 중심으로 하고 그 주위에 정규육사 출신과 민간정치인들이 배열된 동심원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하나회 인맥은 1979-80년 신군부의 등장과 제5공화국의 창출에 주도적 역할을 했으며, 1980년대 한국정치를 좌지우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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