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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사논문




제2장 분석의 틀


제1절 개념정의

정치인맥에 관한 연구는 여러 가지 시각에서 접근할 수 있다. 고전적인 의미에서 인맥은 중세 봉건사회의 가부장제(paternalism)라는 개념을 통해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정치인맥은 20세기 초반 미국에서 유행했던 머신정치(machine politics)의 분석틀에서 파악할 수도 있다. 정당정치가 활성화된 현대에는 정치인맥을 당 내 파벌(faction)의 관점에서 이해하려는 연구자들이 많다. 이 논문에서는 가부장제, 머신정치, 파벌정치 등의 개념을 살펴 보고, 정치인맥의 연구에 가장 유용한 분석의 틀로서 후견제(patronage)라는 개념에 대해 자세히 살펴 보고자 한다.

(1) 가부장제

가부장제는 라틴어의 친족관계(kinship)라는 용어에서 유래된 말로서, 아버지가 그의 아들을 대하는 태도를 본따서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가부장제에 관해 최초로 언급한 사람은 세습제(世襲制, patrimonialism)라는 개념을 발전시킨 베버(Max Weber)이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세습적 관계는 사장, 고용주, 봉건영주, 기타 유사한 사람과 그 보호의 대가로 충성과 복종을 바치는 추종자 무리 사이의 관계로 정의된다. 그는 이러한 세습제도가 계급구조 속에서 사람들간에 지위의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필요한 과업들이 부드럽고 효율적으로 수행되고 있는 문제에 관하여 명쾌한 해답을 제시해 준다고 주장하였다.

가부장제의 몇 가지 기본전제들은 정치인맥을 이해하는 데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어떤 정치인맥의 대부로 불리는 사람은 가부장제의 가장에 비유될 수 있다. 정당의 보스(boss)와 추종자(follower) 사이의 관계는 가부장제에서 윗사람(superior)과 아랫사람(inferior)의 관계에 비유될 수 있다. 가부장제는 중세 봉건사회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났지만 현대 사회에서도 비단 정치분야에서뿐 아니라 사회, 경제, 문화, 종교 등 사회생활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 찾아볼 수 있다. 가부장제는 위계적 조직의 성원들에게 두 가지 측면에서 이해될 수 있다. 하나는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따뜻한 배려와 혜택을 베푸는 기능이고 다른 하나는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기능이다. 많은 경우에 가부장제는 전자의 의미로 이해되지만, 기업경영에서 가부장제는 종종 자본가가 노동자에 대한 억압과 착취를 은폐하고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정치분야에서 가부장제와 정치인맥은 조직 내 민주주의를 억압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2) 머신정치

사회적 의미에서 머신(machine)이라는 용어는 그 구성원들이 서로 다른 기능을 맡아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며 다양한 지위를 점하고 있는 위계적 조직을 의미한다. 정치적 머신은 정치권력의 획득, 유지, 확대를 주된 목적으로 하는 직업적 정치인들로 구성된 집단이다. 이런 맥락에서 지도력과 위계제 그리고 규율 있는 구성원들을 가진 안정적이고 효율적인 정치조직은 정치적 머신이라고 간주될 수 있다.

오스트로고르스키(Moisei I. Ostrogorskii)는 머신과 정당을 구별하여, 머신을 은밀하고 부정한 방법을 사용하여 공공의 이익보다 개인의 사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직업적 정치인들의 집단이라고 규정하였다. 반면 브라이스(James Bryce)는 머신을 정당조직과 동의어로 간주하였는데, 오늘날 대부분의 학자들은 후자의 견해를 따르고 있다.

시카고의 흑인정치를 연구한 고스넬(Harold F. Gosnell)은 머신이 흑인과 소수 인종을 보호하고 이들에게 각종 혜택을 주는 역할을 하였다고 주장하였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미국에서 머신은 복잡한 도시생활에서 어려움을 느끼고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는 유권자들, 특히 영어를 말할 수 없는 이주민들을 위해 생겨났다. 지방정치에서 머신은 공식적인 정부기구의 복잡한 기능을 보완하는 역할을 하였다. 가난하고 투표해 본 경험이 없는 소수 인종과 해외 이주민들은 복잡한 선거절차를 이해할 능력과 시간, 지식이 없었기 때문에 머신의 도움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였다. 이것이 머신이 생겨난 부분적인 이유이다. 그러나 더 깊은 의미에서 볼 때, 모든 정치조직에서 머신의 성장은 불가피하다. 미헬스(Robert Michels)가 '관료제의 철칙'이라고 이름붙인 바와 같이 일반적으로 모든 조직은 아무리 많은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을지라도 결국 소수의 몇몇 사람들에게로 권력이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그에 따라 조직의 지도력은 정당조직으로, 정치적 머신으로, 그리고 마침내 보스에게로 집중된다.

정치적 머신은 정치인맥과 여러 가지 측면에서 유사점을 가지고 있다. 정치적 머신과 마찬가지로 정치인맥은 공공의 이익보다도 자기 그룹의 사적인 이익을 우선시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정치인맥의 구성원이 누구인지, 주된 활동은 무엇인지 등은 명확히 드러나지 않고 관련자들 사이에서만 은밀하게 알려진다. 머신에 소속된 사람은 어려움에 처했을 때 지방정부나 공공기관보다도 머신의 보스를 자신의 후견인, 보호자로 여기는 경향이 강하다. 마찬가지로 정치인맥에 망라된 사람은 자신이 정치적으로 위기에 처했을 때 법적, 행정적 절차를 거치기에 앞서 정치인맥의 보스에게서 도움과 보호를 받기를 기대한다.

머신의 불가피성과 그 긍정적 기능에도 불구하고 머신은 부패를 낳는 구조적 요인이 될 수 있다. 헌팅턴(Samuel P. Huntington)에 따르면, '부패'란 사적인 목적에 봉사하기 위하여 사회적으로 이미 용인된 규범에서 이탈하는 공무원의 행위로 정의된다. 부패는 효과적인 정치제도가 부재한 근대화 도상의 나라들에서 많이 발생한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근대화는 공공의 복지와 개인의 이해를 서로 구별시키고 새로운 집단의식을 유발함으로써, 정치권력과 결탁한 소수 집단이 공공의 복지를 침해하면서까지 자신들의 사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이기주의를 조장할 수 있다. 머신은 집단이기주의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민주주의의 이상은 머신정치에 의해 타락하며, 온갖 사회적 부정부패가 머신에 의해 생겨난다. 머신과 마찬가지로 정치인맥은 부정부패를 낳는 구조적 요인이 될 수 있다.

(3) 파벌정치

일반적으로 파벌(faction)이라는 용어는 큰 집단 속에서 특정한 개인의 이익이나 정책의 관철을 위해 활동하는 하위그룹을 가리키는 말이다. 정치분야에서 파벌은 하나의 정당 내부에서 다른 당원들과는 구별되는 자신들만의 독자적인 이익을 추구하기 위하여 형성된 소집단을 의미한다. 파벌은 정당의 하위체계이다. 파벌은 하나의 정당이라는 공통성에 기반하면서도 각각의 세부적인 사항의 적용상에서 나타나는 차이점 때문에 생겨난다.

파벌의 형성은 외부의 환경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집권여당의 경우 효율적인 반대세력이 존재하지 않을 때 당 내 파벌이 활성화되는 경향이 있다. 강력한 야당이 부재하기 때문에 외부를 향해 돌려져야 할 세력싸움은 당 내부로 돌려지는 경우가 많다. 야당의 경우 가까운 시일 내로 정권을 잡지 못할 것으로 예상되면 당 내 파벌이 활성화되는 경향이 있다. 이런 경우 당 내 의견차이는 매우 심각한 단계에까지 이르게 되고 심하면 정당이 분열되는 수도 있다. 만약 외부에 강력한 반대세력이 존재하거나 혹은 가까운 시일 내로 정권을 잡을 가능성이 높아진다면 당 내 파벌은 위축되고 정당의 내적 통합수준은 매우 높아지게 된다. 혁명적 변화의 시기에 정치파벌은 급격히 해체, 재조직된다. 구체제가 붕괴하고 새 정권이 들어서는 시기에 격렬한 파벌투쟁이 전개되면서 낡은 파벌은 쇠퇴하고 새로운 파벌이 형성된다.

정치인맥은 파벌과 많은 유사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차이점을 가지고 있다. 파벌이 정당 내부의 소집단을 가리키는 용어임에 반해 인맥은 정당뿐만 아니라 행정부, 사법부, 검찰, 경찰, 군부, 언론, 학계, 종교계, 재계 등 사회의 광범위한 분야에 걸쳐 형성된 소집단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인맥은 구성원과 비구성원간의 경계가 모호하고 파벌에 비해 내적 결속력이 그다지 높지 못하다. 그러나 급격한 정치적 변동기를 맞아 이합집산(離合集散)이 심한 파벌과 달리 정치인맥은 외부의 정치적 변화에 큰 영향을 받지 않고 상대적으로 오랫동안 지속되는 경향이 있다.

정치분야에서 파벌이라는 용어는 종종 반대세력을 공격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된다. 하나의 정치세력은 반대세력에 대해 파벌이라는 오명을 덮어씌움으로써 그들이 전체의 이익보다도 자기 파벌만의 이익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고 대중적으로 선전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정치분야에서 인맥이라는 용어는 특정 부류의 사람들이 배타적인 동질감을 형성하고 자신들만의 사적인 이익을 추구하고 있다는 부정적인 인상을 심어줄 수 있다.

(4) 후견제

일반적으로 후견제(patronage)라는 용어는 두 개인간 혹은 여러 사람들간에 맺어지는 상대적 관계, 즉 후견인(patron)과 수혜자(client) 사이의 상호적 관계를 나타내는 개념으로 사용된다. 이 논문에서도 후견제를 '후견인-수혜자 관계'(patron-client relationship)와 동일한 의미로 사용하고자 한다. 후견인-수혜자 관계는 권력, 재력, 명망을 가진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 물질적, 정신적 혜택을 베풀고 그 대가로 자발적인 보답을 받는 관계라고 정의할 수 있다. 다시 말해 후견인은 수혜자의 생활 전반에 걸친 문제들에 대하여 인간적 배려를 베풀고, 수혜자는 후견인의 전반적 배려에 대한 보답으로 자발적인 대가를 치르는 관계라고 할 수 있다.

후견인-수혜자 관계는 후견인과 수혜자 사이에 물질적, 정신적 혜택을 서로 '주고받는'(give and take) 관계라는 점에서 호혜적이지만, 양자의 지위가 대등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불평등한 관계라는 점에서 일방적이다. 후견인-수혜자 관계는 자발적, 호혜적 인간관계라는 점에서 강제적, 일방적 관계인 지배-피지배 관계와 구별된다. 또한 후견인-수혜자 관계는 인격적, 비계약적 관계라는 점에서 비인격적, 계약적 관계인 자유로운 상품교환관계와 구별된다. 결국 후견인-수혜자 관계는 지배-피지배 관계와 자유로운 상품교환관계의 중간 정도에 위치한 인간관계의 한 유형이라고 할 수 있다. 이상 세 가지 인간관계의 특징을 비교하여 도표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 표 2-1 ] 세 가지 인간관계의 비교

특 징 호 혜 성 자 발 성 평 등 성 등가교환성 동 시 성
상품교환관계
후견인-수혜자 관계 × × ×
지배-피지배 관계 × × × × ×


후견인-수혜자 관계에 관하여 정치학, 경제학, 사회학, 문화인류학 등 사회과학의 여러 분야에서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다.

케니(Michael Kenny)는 '후견인'을 한편으로 보호자, 안내자, 모방해야 할 모델로,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다른 사람이나 사물을 자기 자신보다 더 강력하게 다룰 수 있는 중개자로 간주되거나 스스로 그렇게 간주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하였다. 케니에 따르면 개인은 어떤 혜택이나 보호를 받기 위하여 후견인을 찾아나서는 경향이 있다. 다시 말해 수혜자는 후견인이 베푸는 혜택을 거부하지 않고 스스로 요구하고 있으며, 자신이 받은 혜택의 대가로 즉시에 혹은 상당한 시간적 여유를 두고 후견인에게 자발적으로 일정한 보답을 하려 한다. 이런 점에서 그는 후견인-수혜자 관계가 착취관계나 지배-복종 관계와 명백히 구별된다고 보았다.

프리들(Ernestine Friedl)과 캠벨(J. K. Campbell)은 후견인-수혜자 관계의 순기능을 지적하였다. 그들은 그리스(Greece)의 후견인-수혜자 제도에 관한 연구를 통해 이 제도가 학식 있고 부유한 소수의 특권층에게만 자원과 권한이 배분되는 것을 막고 일반인에게도 공평하게 자원을 배분하도록 해 준다고 보았다. 게다가 이러한 제도는 상대적으로 이름없이 격리되어 살아가는 지역주민들을 국가와 사회기구들과 접촉하도록 도와 주는 역할을 한다고 주장하였다.

베네트(John W. Bennett)와 이쉬노(Iwao Ishino)는 일본의 기업과 경제에서 나타나는 가부장제에 관해 연구하였다. 그들은 일본의 임업에서 나타나는 목재상(timber dealer)과 임업노동자(lumbermen) 사이의 관계를 후견인-수혜자 관계를 통해 설명하였다. 임업노동자는 목재상이 심지어 경제적 불황기에도 자신을 고용하고 보호해 준 것에 대한 보답으로 오직 그 목재상을 위해서만 일한다. 만약 임업노동자가 아무런 통고도 없이 갑자기 일을 그만둔다면 그는 위신이 깍이고 앞으로도 그 일을 얻지 못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그들은 목재상과 임업노동자의 관계를 대규모 공장에서 나타나는 기업주와 노동자간의 '오야붕-꼬붕 제도'(oyabun-kobun system)와 비교하여 설명하였다.

콜렌다(Pauline M. Kolenda)와 포콕(David F. Pocock)은 인도에서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는 '자즈맨-카민 관계' (jajman-kamin relationship)에 관하여 연구하였다. 인도의 경우 '자즈맨'은 카스트 제도에서 더 높은 위치를 차지하는 후견인이고, '카민'은 자즈맨을 위해 여러 가지 농업생산물이나 다른 물품들 그리고 비공식적인 서비스를 바치는 수혜자이다. 그들은 어떤 연구자들은 역할이론, 카스트간의 힘 관계, 봉건적 관계 등을 강조하고 다른 연구자들은 경제적 분배의 측면을 강조하는 등 차이가 있지만, 인도의 카스트 제도에서 나타나는 자즈맨-카민 관계는 보다 동양적이고 고전적인 후견인-수혜자 관계에 포함시킬 수 있다고 보았다.

그밖에도 이 분야의 주요 연구성과로서, 후견인-수혜자 관계에 관한 최근의 사회학 이론을 소개하고 있는 아이젠슈타트(Shmuel Noah Eisenstadt)와 로니거(Luis Roniger)의 논문, 남부 이탈리아의 후견인-수혜자 관계를 연구한 그라지아노(L. Graziano)의 논문, 동남아시아의 정치적 부패의 원인을 후견인-수혜자 관계를 통해 분석한 스코트 (James C. Scott)의 논문, 그리고 정당 내부의 파벌을 후견인-수혜자 관계를 통해 분석하고 있는 란데(Carl H. Lande)의 논문 등을 들 수 있다.

정치인맥의 형성과 쇠퇴는 후견제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는다. 많은 경우에 정치인맥은 권력서열상 보다 우월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 자신을 따르는 사람에게 물질적, 정신적 혜택을 베풀고 그 대가로 자발적인 충성과 지지를 얻는 과정에서 형성된다. 만약 서로간에 더 이상 물질적, 정신적 혜택을 주고받는 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면 정치인맥은 해체 또는 쇠퇴할 것이다. 정치인맥의 보스는 추종자들에게 공식적 상하관계로 대하기보다 그들의 사적인 문제들까지 함께 고민하고 해결하도록 도와주는 비공식적, 인간적 상하관계로 대하는 것이 보통이다. 마찬가지로 추종자는 보스에 대해 어린아이가 부모를 대하듯 무조건적으로 추종하고 복종하는 자세를 취한다. 정치인맥의 보스와 추종자 사이의 관계는 장인(artisan)과 도제(apprentice), 부모와 자식, 스승과 제자, 군주와 신하의 관계에 비유되는 후견인-수혜자 관계를 본질로 하고 있다.

정치분야에서 후견제는 공식적 정당조직 안에서는 해결할 수 없는 많은 문제들을 비공식적인 경로를 통해 손쉽게 해결할 수 있도록 해 줌으로써 공식적 정당조직을 보완하는 역할을 한다. 또한 후견제는 '정치인-정치인' 또는 '정치인-유권자' 사이의 유대관계를 공고한 것으로 만들어 주고, 급격한 정치적 변동에도 크게 영향을 받지 않고 인간적 유대관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해 준다. 그러나 후견제는 가부장제, 머신, 파벌 등과 마찬가지로 조직 내 민주주의를 억압하고 부정부패를 조장하며 자기 집단 중심의 배타적 이기주의를 부추기는 등의 부정적 측면을 가지고 있다.



제2절 후견인-수혜자 관계의 모형화

정치분야에서 후견인은 권력서열상 더 우월한 위치에 존재하며 권력을 행사하여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물질적, 정신적 혜택을 베풀고 그 대가로 자발적인 복종과 지지를 이끌어내는 사람으로 정의된다. 수혜자는 자신보다 더 큰 권력을 가진 사람으로부터 유형, 무형의 보호와 혜택을 받으며 그 대가로 자발적인 충성과 지지를 바치는 사람으로 정의된다.

(1) 특징

정치분야에서 후견인-수혜자 관계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진다.

첫째, 권력을 매개로 하여 권력서열에 따라 형성되는 관계이다. 이 관계는 대개의 경우 권력서열상 더 높은 지위에서 더 큰 권력을 가진 사람을 후견인으로 하고 상대적으로 낮은 지위에서 크지 않은 권력을 가진 사람을 수혜자로 하는 관계이다.

둘째, 권력의 배분이 이루어지거나 혹은 그 가능성이 있을 때 형성되는 관계이다. 정치인과 추종자간의 결합을 공고히 하는 요인에는 이념적 동질성, 개인적 친분과 지역적 연대감, 정치지도자의 지도력, 정치권력의 배분, 정치자금의 배분 등이 있지만, 이 중에서도 특히 정치권력과 정치자금의 배분이 커다란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정치권력의 배분에는 주요 당직의 배분, 후보 공천, 공직 추천, 그리고 정치자금의 배분 등이 포함된다.

셋째, 혜택을 베푼 사람은 보답을 기대하고 혜택을 받은 사람은 반드시 그 대가를 보답하는 관계이다. 혜택에 대한 보답은 즉시에 일어날 수도 있지만, 대개의 경우 다소 시간적 간격을 두고 일어난다. 때때로 혜택에 대한 보답은 평생에 걸쳐 이루어지기도 한다. 만약 혜택에 대한 보답이 없거나 없을 것이라고 기대되면 후견인-수혜자 관계는 더 이상 유지되지 않고 해소될 것이다.

(2) 유형

정치분야에서 후견인-수혜자 관계는 다음의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살펴 볼 수 있다. 하나는 정치인과 정치인 사이의 지도자-추종자 관계에서 나타나는 후견인-수혜자 관계이고, 다른 하나는 정치인과 일반 유권자 사이의 대표자-지지자 관계에서 나타나는 후견인-수혜자 관계이다. 이 두 유형은 그 관계의 개념, 외연, 특징 등의 측면에서 서로 구별하여 설명할 수 있다.

첫번째 유형인 '지도자-추종자 관계'(leader-follower relationship)에서 나타나는 후견인-수혜자 관계는 권력의 정점에 위치한 사람이 자신을 추종하는 사람에게 권력의 일부를 나누어 주고 그 대가로 자발적인 충성을 이끌어 내는 관계로 정의된다. '대통령과 각료' 또는 '정당의 보스와 추종자' 사이에 맺어지는 관계는 권력을 매개로 한 지도자-추종자 관계의 외연에 속한다. 지도자-추종자 관계는 정치인들간에 서로 대등하게 결합된 수평적 관계가 아니라 권력의 정점에 위치한 사람과 그 추종자 사이에 상하로 맺어진 수직적 관계라는 특징을 가진다. 이 관계에서는 상명하복(上命下服)의 위계적 질서, 즉 상부의 권위에 대한 무조건적인 복종과 충성이 강조된다.

두번째 경우인 '대표자-지지자 관계'(representative-supporter relation- ship)에서 나타나는 후견인-수혜자 관계는 권력을 가진 사람이 자신을 대표로 선출해 준 사람들에게 각종 혜택을 베풀고 그 대가로 자발적인 지지를 얻는 관계로 정의된다. 국회의원과 지역구민 사이의 관계나 선거에서 후보자와 유권자 사이의 관계는 대표자-지지자 관계의 외연에 속한다. 대표자-지지자 관계에서 나타나는 후견인-수혜자 관계는 대등한 관계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엄격한 상하관계라고 할 수도 없다. 이 관계는 대표로 선출되어 권력을 가지게 된 사람과 그 사람에 대한 지지자 사이에 맺어지는 다소 느슨한 수직적 결합관계이다.

[ 표 2-2 ] 두 유형의 비교


비 교 항 목 지도자-추종자 관계 대표자-지지자 관계
관계를 맺는 주체 정치인-정치인 정치인-유권자
후견인이 제공하는 혜택 정치권력의 배분 재화와 용역의 제공
수혜자가 보답하는 대가 충성과 복종 자발적 지지
관계의 성격 위계적て수직적 관계 느슨한 수직적 관계


여기서 강조할 것은 후견인-수혜자 관계가 절대적 개념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만 규정될 수 있는 상대적 개념이라는 점이다. 어떤 정당의 지구당 위원장은 지역 유권자들에 대해서는 후견인의 위치에 있지만 자신이 소속한 정당의 보스에 대해서는 수혜자의 위치에 있게 된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지도자-추종자 관계와 대표자-지지자 관계를 결합하여 하나의 그림으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3) 피라미드 구조

스코트(James C. Scott)에 따르면 후견인-수혜자 관계는 후견인과 수혜자의 직접적인 연계로 이루어진 단순한 클러스터(cluster)에서 시작하여, 한 명의 후견인을 정점으로 여러 명의 수혜자가 중층적으로 연계된 피라미드(pyramid)로 발전하고, 마침내 크고 작은 여러 피라미드들이 복합적으로 연계된 네트워크(networks)로 확대된다. 피라미드 조직에는 여러 명의 수혜자가 망라될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하나의 피라미드 조직에는 오직 한 명의 후견인만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이 피라미드 조직은 수혜자들 상호간의 연계보다도 후견인과 수혜자의 일대일 연계에 존립기반을 두고 있다.

정치인들간의 후견인-수혜자 관계는 '정치지도자-중간보스-일반추종자'로 이어지는 복합적인 종적(縱的) 피라미드 구조를 형성한다. 정치지도자는 자신에게 가장 충직한 소수의 핵심적 추종자들과 직접적인 호혜관계를 형성하고, 자신을 정점으로 하는 소규모의 피라미드 조직을 형성한다. 마찬가지로 핵심추종자는 자신을 따르는 소수의 추종자들과 호혜관계를 형성함으로써 자신을 정점으로 하는 또 다른 피라미드 조직을 형성한다. 이와 같은 소규모의 피라미드 조직들이 충성과 배려의 호혜적 관계에 따라 복합적으로 결합됨에 따라 정치인들간의 후견인-수혜자 관계는 정치지도자를 최고 정점으로 하고 그 직속으로 중간보스들이 위치하며 맨 마지막에 일반추종자들이 위치하는 거대한 종적 피라미드 구조를 형성한다. 이 피라미드 구조를 따라 정치조직의 실질적인 명령계통과 상벌체제가 형성된다. 이러한 복합적 피라미드 구조가 앞에서 스코트가 말한 후견인-수혜자 네트워크이다.

(4) 동심원 구조

정치분야의 후견인-수혜자 관계는 최고지도자를 중심으로 하는 동심원 구조를 형성한다. 동심원의 중심에는 후견인-수혜자 네트워크의 최상위 피라미드에서 후견인의 역할을 하는 한 명의 정치지도자가 존재하고, 그와 그의 추종자들로 첫번째 동심원이 형성된다. 그 주위에 중간보스들을 후견인으로 하는 크고 작은 여러 개의 피라미드들을 포함하여 두번째 동심원이 형성되고, 계속해서 일반정치인들까지 포함하는 여러 개의 동심원이 형성되며, 마지막으로 일반유권자까지 모두 포함하는 거대한 동심원이 형성된다. 피라미드 구조에서와 마찬가지로 동심원 구조에서도 추종자들 상호간의 관계보다 최고지도자와 추종자간의 관계가 더욱 중요한 기준이 된다.

하나의 작은 동심원은 최고지도자로부터 동일한 정치적 거리(political distance)에 있는 추종자들로 이루어진다. 정치적 거리는 최고지도자로부터 추종자가 받는 신임의 정도에 비례한다. 최고지도자와 추종자간의 접촉이 많을수록, 그리고 이를 통해 양자간의 호혜적 관계가 긴밀해질수록 최고지도자와 추종자간의 정치적 거리는 가까와진다. 최고지도자와 정치적으로 더 가까운 거리에 있는 사람일수록 더 큰 정치적 권한을 소유할 수 있고, 더 많은 정치적 자원을 분배받을 수 있다. 참고로 정치적 거리를 구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만약 하나의 동심원 구조 안에 또 다른 중심이 형성되어 독자적인 후견인-수혜자 네트워크를 형성하면 기존의 동심원이 분리되어 두 개 이상의 새로운 동심원이 형성된다. 동심원의 분리는 대개의 경우 상에서 하의 방향으로, 즉 최상층의 분리에서부터 시작하여 중간보스들의 분리를 거쳐 마침내 일반정치인과 유권자의 분리로까지 이어지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동심원의 분리에는 세 가지 유형이 있다. 첫째는 최상층 동심원의 분리만 이루어지고 그 이하의 동심원은 그대로 유지되는 경우로서, 단순히 최고지도자만 교체되는 경우이다. 둘째는 최상층의 분리로 인해 그를 따르는 중간보스들을 포괄하는 동심원까지 분리되는 경우로서, 정당 내 특정 파벌이 몰락하고 새로운 파벌이 등장하는 경우이다. 세째는 최상층과 중간보스들의 분리로 인해 그를 지지하는 일반유권자들까지 분리되는 경우로서, 정당이 둘 이상으로 갈라지거나 혹은 일부 세력이 탈당하여 새로운 정당을 창당함으로써 유권자들의 정당지지분포가 변화하는 경우이다. 대개의 경우 동심원의 분리는 최고지도자 개인의 교체로 끝나지 않고 그를 따르는 특정 파벌의 교체나 정당의 분리로까지 확산되는 경향이 있다.

<그림 2-7>과 같이 많은 경우에 하나의 정치적 공간에는 두 개 이상의 서로 다른 동심원이 중첩(overlap)되어 나타난다. 이에 따라 일반유권자는 동시에 여러 개의 동심원에 포함될 수 있다. 위의 그림에서 D는 동심원 A와 B에 모두 포함되어 있는데, A와의 정치적 거리가 B와의 정치적 거리보다 더 가까운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D는 C와는 후견인-수혜자 관계를 형성하고 있지 않다. 이와 같이 일정 기간 동안 두 개 이상의 동심원이 중첩되어 존재하면서 자유로운 경쟁이 벌어지는 정치활동공간을 다원주의 정치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후견인-수혜자 관계는 정치분야에서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다. 그 이유는 사회의 전반적인 근대화, 합리화 추세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정치분야에는 전근대적, 전통적 요소들이 강하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많은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전통사회에서 근대사회로 이행하는 급격한 변혁의 시기에, 그리고 합리주의나 개인주의에 기반한 계약적 관계에서보다 인정과 의리에 기반한 공동체적 관계에서 후견인-수혜자 관계가 더 쉽게 형성되고 있다. 근대화론의 시각에 선 사람들은 근대화의 진전과 함께 전근대적 인간관계가 보다 합리적이고 계약적인 인간관계로 대체될 것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과는 달리 현실에서는 근대화 과정에서 개인주의화, 원자화된 개인들이 오히려 정서적, 공동체적 유대관계를 중요시하는 후견인-수혜자 관계에 더 적극적으로 매달리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한편 한국정치의 후견인-수혜자 관계가 권위주의 정권하에서 왜곡된 정치과정의 결과로 생겨났다고 보면서 앞으로 한국정치의 민주화가 진행됨에 따라 보다 자율적이고 민주적인 인간관계로 대체될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시각과는 달리 오늘날 선거, 정당, 의회의 자율성이 커지고 권위주의 정권이 민주적인 정권으로 변모해 나가는 시기에 오히려 지역주의적 투표행태가 더 심하게 나타나는 등 혈연, 지연, 학연에 기반한 후견인-수혜자 관계는 쉽사리 소멸되지 않고 있다. 결국 후견인-수혜자 관계는 혈연, 지연, 학연과 같은 전통적 인간관계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급속한 근대화와 산업화 그리고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소멸되지 않고 오랫동안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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