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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사논문


자유주의, 마르크스주의, 그리고 폴라니
-정치발전론 1994년 2학기 학기말 보고서-
담당교수: 안 청 시 선생님
제출자: 서 창 녕



1. 문제제기 | 2. 세 가지 시각 | 3. 경제적 자유주의에 대한 비판 | 4. 마르크스주의와 폴라니의 차이 | 5. 폴라니는 대안이 될 수 있는가 | 6. 맺음말 | <참고문헌>





1. 문제제기


사회주의권의 붕괴는 시장민주주의의 완전한 승리를 의미하는가? 1980년대 후반부터 소련과 동유럽의 여러 국가들이 사회주의의 길을 버리고 시장민주주의를 향해 발을 내딛었을 뿐 아니라, 중국과 베트남 등의 아시아 국가들도 '시장사회주의'라는 이름으로 자본주의적 시장제도의 도입을 시도하고 있다. 동유럽, 남미, 동아시아에서 새로운 민주주의는 지금 예외없이 시장지향적 자유민주주의체제를 지향하고 있다. 현실정치에서뿐 아니라 이론분야에서도 시장과 민주주의를 향한 시대적 조류가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후쿠야마(Fukuyama)는 "서구자유주의에 대한 생존력 있는 체계적 대안의 고갈"과 '시장민주주의의 최종적 승리'를 선언했고, 프리드만(Milton Friedman)은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는 가장 행복한 동반자"라고 선언했다. 요약하면 시장과 민주주의는 21세기를 준비하고 있는 오늘날 지구공동체의 표어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회주의권의 붕괴가 곧바로 시장민주주의의 근본적 문제점의 해결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시장기구에 의한 자원배분은 생산의 무정부성(無政府性), 환경의 오염과 파괴, 빈익빈 부익부 현상, 실업과 인플레이션 등 자본주의의 오랜 문제점들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오늘날 권위주의체제를 청산하고 민주주의체제를 향해 나아가는 변혁기(變革期)를 맞은 여러 나라들은 사회주의의 길이 아니라 시장과 민주주의의 길을 택하고 있지만, 그러한 선택이 곧바로 이들 나라의 장밋빛 미래를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다. 권위의 단절과 해체, 규범의 상실 등 변혁기의 정치적 문화적 증상이 시장민주주의의 여러 문제점들과 결합되어 이들 국가의 미래를 더욱 어둡게 만들 우려도 전혀 배제할 수 없다. 결국 시장민주주의의 문제점들을 분명히 인식하고 이것을 극복하기 위한 효과적인 대응책을 마련할 때에만 다가올 21세기를 보다 풍족하고 인간적인 사회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한편으로는 사회주의권의 붕괴에서 교훈을 찾고, 다른 한편으로는 시장민주주의의 문제점을 극복하고자 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폴라니(Karl Polanyi)의 이론은 점증하는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오늘날 폴라니가 주목받는 이유는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하나는 그가 시장의 역사적 제한성을 지적하고 경제적 자유주의를 비판했기 때문이며, 다른 하나는 현실사회주의에 대해서도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마르크스주의와 근본적으로 다른 이론을 전개했기 때문이다. 사회주의를 거부하면서도 자유주의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개선하려는 사람들에게 폴라니의 이론이 큰 호소력을 지니며 다가서고 있다.

이 글의 목적은, 첫째 경제적 자유주의와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폴라니의 견해를 살펴보고, 둘째 이를 바탕으로 폴라니의 이론이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적절한 대안이 될 수 있는지를 검토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이 글에서는 자유주의이론에 대한 폴라니의 비판을 정리해 보고, 마르크스주의와 폴라니의 이론이 어떻게 상이한가를 항목별로 대비해 보며, 마지막으로 현재적 시각에서 폴라니 이론의 긍정점과 한계점을 평가하고자 한다.



2. 세 가지 시각


<표 1> 강경론과 온건론의 비교

  자유주의 마르크스주의 폴라니
1. 방법론 방법론적 개인주의 전체주의, 경제결정론 제도주의
2. 경제의 의미 형식적 의미의 경제 실질적 의미의 경제 실질적 의미의 경제
3. 시장의 역사적 보편성 전인류사에서 보편적 19∼20세기의 산물 19세기의 산물
4. 통합의 형태 자기조절적 시장 국유화, 계획 호혜, 재분배, 교환
5. 국가와 시장의 관계 시장 우위 국가 우위 국가 및 사회 우위
6. 분석의 초점 시장에 초점 생산관계에 초점 시장에 초점
7. 계급 명목적 계급, 사회계층 실질적 계급 사회적, 문화적 계급
8. 미래상 시장민주주의의 승리 시장철폐, 계급독재 시장의 대안 필요


위의 표는 자유주의, 마르크스주의, 폴라니의 세 가지 시각을 여덟 가지 항목에 걸쳐 비교한 것이다. 이 표에 대해 이야기하기에 앞서 먼저 자유주의, 마르크스주의, 폴라니 이론이 의미하는 바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1) 자유주의(liberalism)

이 글에서는 자유주의를, 폴라니가 '경제적 자유주의'라고 일컬은 것으로서, 국가의 간섭이 없이도 시장의 자율적 조정에 의해 바람직한 사회질서를 형성할 수 있다고 보는 사상이라는 의미로 사용하고자 한다. 원래 자유주의란 근대 자본주의의 성립기에 나타난 것으로서 개인의 자유를 중요시하고 사적 소유와 시민적 권리의 보장을 추구하는 사상이다. 자유주의사상은 크게 세 단계를 거쳐 발전되었다. 초기 자유주의사상은 홉스(Hobbes), 로크(Locke), 루소(Rousseau)에 의해 주장된 것으로서 봉건제와 절대주의에 반대하고 인간의 이성에 근거한 개인적 자유의 추구를 절대시했다. 그 후 벤담(Bentham), 밀(J. S. Mill) 등의 공리주의적 자유주의자들은 개인적 이익의 총합으로서 공리를 극대화하는 것, 즉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20세기에 들어와 자유주의는 라스키(Laski), 맥퍼슨(C. B. Macpherson) 등에 의해 자본주의와 자유주의를 양립시키려는 신자유주의사상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같은 이름의 '자유주의'라고 하더라도 그 의미는 매우 다양하다. 이 글에서는 자유주의를, 넓은 의미에서 근대 초기 이후 형성된 자유주의사상 전반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스미스(Adam Smith)가 말한 바와 같이 개인의 자유로운 행동이 시장이라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전체 사회의 조화로운 질서를 형성한다고 보는 사상으로 좁은 범위에서 이해하고자 한다.

(2) 마르크스주의(Marxism)

이 글에서는 마르크스주의를 마르크스-엥겔스에 의해 창시되고 레닌에 의해 발전되어 소련 및 동유럽 사회주의국가들에서 현실적으로 구현된 사상으로 이해하고자 한다. 마르크스주의는 19세기 중반 프롤레타리아계급의 사상으로 창시된 이후 각국에 전파되면서 여러 양태를 띠게 되었다. 그 결과 같은 이름의 마르크스주의라고 하더라도 주장하는 내용에서 큰 차이가 생기게 되었다. 크게 세 가지 조류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 소련 및 동유럽에 수용된 마르크스-레닌주의로서 변증법적 유물론과 사적 유물론, 정치경제학, 과학적 사회주의를 3대 구성부분으로 하는 정통 마르크스주의이다. 둘째, 중국 및 베트남, 북한 등에 전파된 마르크스주의로서 인민의 자발성을 강조하며 계급모순의 해결보다 민족해방의 문제를 더 중요시한다. 셋째, 서유럽의 사회민주주의로서 자본주의체제 안에서도 노동자들의 점진적인 복지증진이 가능하다고 보며 러시아식 폭력혁명이 아니라 의회를 통한 평화적 이행전략을 채택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마르크스주의를 첫번째의 경우, 즉 정통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의미로 사용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폴라니의 이론이 정통 마르크스주의의 주장과 가장 선명하게 대비되기 때문이다.

(3) 폴라니(Polanyi) 이론

이 글에서 말하는 폴라니 이론이란 폴라니 자신의 독특한 경제인류학이론을 지칭할 뿐 아니라, 그의 분석시각을 이용해 연구활동을 벌인 여러 명의 인류학자, 고고학자, 경제사학자 및 발전경제학자 들의 이론을 포함한다. 폴라니는 1886년 헝가리의 비엔나에서 태어나 젊은 시절에는 마르크스주의를 학습했으나 곧 결별하고, 1933년 영국으로 건너가 기독교 좌파 그룹에서 활동하며 영국 노동자계급의 비참한 처지를 목격하게 되었다. 다시 1940년 미국으로 건너가 대학교수로서 강의 및 연구활동에 전념하였다. 그는 다섯 권의 책을 집필 또는 편집했는데, 대부분의 책이 독일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헝가리어, 일본어 등 여러 언어로 번역되어 출판되었다. 그의 이론은 경제적 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시작해서 비시장경제를 설명하기 위한 다양한 개념들을 고안하는 데로 발전하였다. 그가 고안한 호혜, 재분배, 교환 등의 개념들은 중세유럽(R. Hodges; Odner), 인도네시아(P. Wheatley; C. Geertz), 잉카(N. Wachtel), 하와이(T. K. Earle), 중국(M. Mancall) 등을 분석하기 위해 사용되고 있다. 폴라니의 이론을 한 마디로 규정하기는 어렵지만, 그 핵심은 시장제도를 인류역사의 보편적 장치로 보는 경제적 자유주의를 비판하고 비시장제도에 대한 역사적, 실증적 연구를 통해 시장을 넘어서는 새로운 대안을 찾으려 한 이론적 노력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상으로 세 가지 시각의 개념적 외연(外延)을 분명히 하였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누구를 중심으로 어디에 초점을 맞출 것인가 하는 것이다. 중심과 초점을 분명히 해야 논의가 지나치게 확장되는 것을 막을 수 있고, 또 논의가 산만하지 않도록 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폴라니의 이론을 중심으로 시장(market)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다시 말해 폴라니의 시각에서 경제적 자유주의의 시장 개념을 비판하고, 폴라니의 관점에서 마르크스주의와 차이점을 살펴보고, 마지막으로 폴라니 자신이 제시한 시장 개념에 대해 평가하고자 한다.



3. 경제적 자유주의에 대한 비판


경제적 자유주의는 자체의 관행과 방법이 진보의 일방적 법칙을 자연스럽게 발현하고 있다는 망상 아래서 작용하였다. 이러한 관행과 방법을 일반적 법칙의 틀에 맞추기 위해 자기조정적 시장의 근저에 깔린 원리들을 인류의 문명사 전체에 투사시켰다. 그 결과 교역, 시장, 화폐 및 도시생활과 민족국가의 진정한 성격과 기원이 거의 식별할 수 없을 만큼 왜곡되었다. - 폴라니, {거대한 변환}

폴라니의 이론은 19세기의 경제적 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시작된다. 그의 비판은 방법론, 경제의 형식적 의미와 실질적 의미, 통합의 형태, 국가와 시장의 관계, 미래상에 이르기까지 경제적 자유주의의 전분야에 걸쳐 행해지고 있다.

[ 요 점 1 ] 경제적 자유주의에 대한 폴라니의 비판

1. 방법론 경제적 자유주의는 개인의 동기로부터 사회제도를 설명하려 함.
반대로 폴라니는 사회제도로부터 개인의 행위를 설명하려 함.
2. 경제의 개념 경제적 자유주의는 합리화 행위로 이해되는 형식적 의미의 경제 개념 사용.
폴라니는 형식적 의미의 경제가 아니라 실재적 의미의 경제 개념만이 과거와 현재의 모든 역사적 경험적 경제현상을 연구하는 데 적합하다고 봄.
3. 통합의 형태 경제적 자유주의는 '자기조절적 시장'을 인류역사의 보편적 통합형태로 봄.
그러나 폴라니에 따르면 '자기조절적 시장'은 19세기 이후에 출현한 역사적 산물에 불과하다. 인류학적으로 볼 때 통합의 형태에는 호혜, 재분배, 교환 등 여러 가지가 존재한다.
4. 국가와 시장의 관계 경제적 자유주의는 시장을 국가간섭으로부터 개인을 보호할 수 있는 장치로 봄.
폴라니에 따르면 자유방임경제는 자연적으로 발생한 것이 아니라 의식적인 정부개입의 산물이었다.
5. 미래상 경제적 자유주의자들은 자유방임을 희생함으로써 시장제도를 회생시키고자 함.
반면 폴라니는 시장이라는 유토피아를 폐기함으로써 복합사회에서 자유를 실현할 수 있다고 봄.


(1) 방법론

경제적 자유주의는 '방법론적 개인주의'(methodological individualism)에 기초하고 있다. 방법론적 개인주의는 대규모 사회현상을 개인의 합리적 행위를 통해 설명할 수 있다고 보는 방법론이다. 이 입장은, 첫째 사회현상에 관한 한 오직 개인들만이 궁극적인 원인력을 가지며, 둘째 사회적, 집단적 개념은 그 사회현상을 창출하는 개인들의 행위속성, 그리고 그들 사이의 관계로만 정의될 수 있고, 셋째 대규모 사회현상에 관한 법칙은 개인과 대규모 사회현상을 관련지어 주는 구성률 또는 일치율을 통해 개인적 사실에 관한 미시적 법칙으로 환원될 수 있다고 본다.

경제적 합리주의는 원자론적 개인주의에 입각하여 물건을 교환하려는 인간의 타고난 습성을 가정한다. 이들에게서 사회제도는 단지 개인의 동기가 발현되는 환경 혹은 개인적 동기의 총합일 뿐이다. 예를 들어 스미스에게 일차적이고 중요한 것은 개인의 교환성향과 이기심이고, 시장이라는 '보이지 않는 손'은 개인들의 합리적 행위의 집합적 결과일 뿐이다.

그러나 폴라니에 따르면 각 경제형태를 연구함에 있어서 각 개인의 동기를 선험적으로 가정하는 것은, 실제로는 존재하지도 않는 것을 가정하게 될 위험이 크다. 개인의 동기나 개인의 효용이란 사실상 측정이나 확인이 불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위험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개인으로부터 사회제도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사회제도로부터 개인의 행위를 설명하는 것이다. 이것이 폴라니가 말하는 '제도주의적 방법'이다.

폴라니는 이것을 호혜, 재분배, 교환이라는 통합의 형태를 예로 들어 설명하고 있다. 대체로 '호혜성'이란 대칭적으로 분류된 개인 또는 집단 사이에 재화와 용역이 이동하는 것을 말하고, '재분배'는 중앙집권적 기구를 중심으로 재화가 이동하는 것이며, '교환'은 시장체계에서 사람들 사이에 일어나는 쌍방간의 이동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호혜성은 그것이 존재하기 위한 배경으로서 대칭적으로 분류된 개인이나 집단을 가정하고 있는 셈이고, 재분배는 그 집단 내에 특정한 중심이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으며, 교환은 가격이 결정되는 시장체계를 외적 제도로서 필요로 하고 있다. 여기서 요점은 개인의 요구, 개인의 행위로부터 호혜, 재분배, 교환이 가능하도록 하는 사회제도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사회제도로부터 호혜, 재분배, 교환이라는 개인 및 집단의 행위를 설명하는 것이다. 피상적으로 볼 때 각 통합형태는 개인적 행위의 개개 양상들의 총합을 반영하고 있는 데 불과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개인적 행위들의 단순한 총합이 저절로 그러한 조직들을 낳지는 못한다. 대칭적으로 조직된 친족집단과 같은 사회제도가 존재할 경우에만 비로소 개인들간의 호혜행위가 경제를 통합한다. 마찬가지로 공동체 속에 분배적 중심점이 존재하는 사회제도에서만 재분배라는 통합형태가 존재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시장체계라는 제도적 환경이 존재해야만 개인적 수준에서의 각종 교환행위들이 비로소 가격을 형성할 수 있다.

위의 사례가 말해 주듯이, 경제영역에서 명확한 '제도적 선결조건'이 있을 때에만 개인들의 행위가 예견된 사회적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방법론적 개인주의에 기초하고 있는 경제적 자유주의는 개인행위의 전제조건인 사회제도를 경시한 잘못을 범하고 있다.

(2) 형식적 의미의 경제와 실재적 의미의 경제

폴라니는 '경제' 개념을 독립적 근원을 갖는 두 개의 의미로 구별하였다. 하나는 전인류사에 적용될 수 있는 실재적 의미의 경제이고, 다른 하나는 19세기 시장자본주의의 출현 이후 생겨난 형식적 의미의 경제이다.

첫째, '실재적 의미'에서 경제적이라는 말은 인간이 자연 및 사회환경과 상호작용하는 과정, 특히 그 상호작용이 인간에게 물질적 욕구충족의 수단을 제공하는 과정을 가리킨다. 이런 점에서 실재적 의미의 경제는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 자연과 동료들에게 의존하며 물질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벌이는 모든 활동을 의미한다.

둘째, '형식적 의미'에서 경제적이라는 말은 명백한 선택상황, 즉 수단의 부족에서 비롯되는 서로 다른 용도의 수단들 사이에서 선택을 내리는 것을 의미한다(희소성의 원리). 이것은 수단-목적 관계라는 논리적 특성에서 비롯된다. 경제학 용어로 이것은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혜택"을 추구하는 일종의 '경제화 행위'이다.

폴라니는 '실재적 의미의 경제' 개념만이 과거와 현재의 모든 역사적 경험적 경제현상을 연구하는 데 적합하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형식적 의미의 경제는 시장기구가 작동하기 시작한 19세기 이후에는 타당하지만, 그 이전의 비시장제도를 이해하는 데는 부적절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경제적 자유주의에서 말하는 '경제' 개념은 형식적 의미의 경제이다. 그것은 사용가능한 수단의 희소성(稀少性)이라는 전제를 기반으로 인간의 경제행위를 설명하려 한다.

우리가 이어받은 경제적 합리주의는 행위의 양상을 독특하게 경제적인 것으로 전제하고 있다. … 경제행위 또는 좀더 정확히 말한다면, 합리성의 요체인 경제화 행위(economizing action)는 그렇다면 이러한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로부터 극대의 목표가 성취될 수 있도록 시간과 에너지를 안배하는 방식이라 간주된다. 아울러 경제는 곧 그러한 행위의 자취인 것이다. - 폴라니, {교역과 시장}

결국 형식적 의미의 경제란 시장에 의해서만 통제되고, 규제되고, 인도되는 경제체계, 즉 시장경제이다. 이러한 종류의 경제는 인간이 화폐이익을 최대화하기 위해 행동한다는 가정에 근거하고, 재화와 용역의 공급이 수요와 일치하는 시장을 전제로 하고 있다. 따라서 형식적 의미의 경제 개념은 시장체계가 존재하는 특정한 경제적 시기를 설명할 수는 있지만, 몰역사적 보편적 개념으로 사용될 수는 없다. 다시 말해 형식적 의미의 경제 개념에 기반을 둔 시장사회는 전인류적 보편현상이 아니라, 19세기 이후의 예외적이고 일시적인 현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것이 경제적 자유주의의 경제 개념에 대한 폴라니의 비판의 핵심이다.

(3) 통합의 형태: 호혜, 재분배, 교환

통합의 형태란 하나의 경제가 통일 및 안정을 획득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경제적 자유주의는 통합형태로서 '자기조절적 시장'(self-regulating market)을 강조한다. 그러나 폴라니에 따르면 역사적으로 통합의 형태에는 호혜, 재분배, 교환 등 여러 가지가 있으며, '자기조절적 시장'이라는 통합의 형태는 19세기 이후의 발명품에 불과하다.

폴라니에 따르면 18세기 말 중상주의국가의 '통제적 시장'으로부터 '자기조정적 시장'으로의 이행은 사회구조의 본질적 전환을 표시하는 것이었다. 자기조정적 시장이 요구하는 것은 사회가 제도적으로 경제적 영역과 정치적 영역으로 명확히 분할되는 것이었다. 여기서 '자기조정'이란 모든 생산활동이 시장판매를 위해 수행되고 모든 소득이 그와 같은 판매로부터 생겨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모든 생산요소(즉 재화, 노동, 토지, 화폐)에 대해 시장이 존재하며, 또한 각 요소들의 가격(즉 상품가격, 임금, 지대, 이자)이 존재한다. 엄밀하게 보았을 때 노동, 토지, 화폐라는 상품은 완전히 '허구적'인 것이다. 노동은 생활 그 자체에 수반되는 것이지 판매를 위해 생산되는 것이 아니다. 토지 역시 인간에 의해 생산되지 않는 자연의 별칭일 뿐이다. 화폐는 은행을 통해 존재하는 구매력의 상징일 뿐이지 그 자체가 판매를 위해 생산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세기 자기조절적 시장이 지배하는 사회제도에서는 노동, 토지, 화폐라는 '허구적 상품'이 실제로 시장에서 판매된다. 이것이 통합의 형태로서 자기조절적 시장이 갖는 현실적 힘이다.

폴라니는 시장제도가 존재하기 이전에 인류역사에 존재했던 다양한 통합의 형태에 관심을 돌렸다. 이를 통해 그는 호혜(reciprocity), 재분배(redistribution), 집안살림(householding)이라는 전혀 다른 유형의 통합형태들을 발견했다. 각 형태들은 대칭성, 중심성, 자급자족이라는 사회조직의 도움을 빌어 제도화되어 있었다. 서유럽에서 봉건제도가 종언을 고하기 이전까지 존재했던 모든 경제체계는 이러한 호혜, 재분배, 집안살림이라는 두세 가지 원리의 다양한 조합에 기초하여 조직되어 있었다. 그는 호혜, 재분배, 교환이라는 통합의 세 가지 형태가 어떤 특정한 발전단계를 대변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호혜→재분배→교환이라는 발전단계 도식은 타당하지 않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여러 가지 종속적 형태들이 지배적인 것과 나란히 나타날 수도 있고, 그 지배적 형태가 일시적으로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부족사회에서는 호혜성과 재분배가 실행되었던 반면, 고대사회에서는 어느 정도 교환의 여지가 있었다 하더라도 재분배가 지배적이었다. 또한 부족 및 고대사회에서 지배적 통합형태였던 재분배는 현대에 와서 소련을 포함한 사회주의 국가들에서 많이 나타났다.

결국 폴라니가 다양한 통합의 형태가 실존했음을 증명함으로써 말하고자 했던 바는, '자기조절적 시장'이라는 통합형태를 인류역사의 보편적이고 유일한 통합형태로 간주하는 경제적 자유주의의 오류를 통렬히 비판하는 것이었다.

(4) 국가와 시장의 관계

국가와 시장의 관계를 보는 경제적 자유주의의 시각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자유방임'이라고 할 수 있다. 야경국가론, 최소국가론 등의 이름으로 불리는 자유방임의 사상은 스미스(A. Smith)에게서 잘 나타난다. 스미스는 전통과 관습에서 인간을 해방하기 위해 사회를 재발견하는 작업에 착수했는데, 국가의 간섭으로부터 개인을 보호할 수 있는 장치로서 그가 주목한 것이 바로 시장이었다. 즉 자본주의적 시장은 정치적 자유를 얻기 위한 하나의 해결책이었던 것이다.

경제적 자유주의는 시장체제를 창조하기 위한 사회조직의 원리로 이해된다. 그것은 1820년대에 이르러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교리를 표방하게 되었다. 첫째, 노동의 가격 즉 임금은 시장에서 자유롭게 결정될 수 있다. 따라서 노동가격을 인위적으로 통제하려 했던 스피남랜드(Speenhamland) 법은 더 이상 자유주의자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1834년 [수정구빈법]으로 대체되었다. 둘째, 화폐의 창조는 시장의 자동적 메커니즘에 따라야 한다. 이것은 1844년 [필 은행 조례]를 통해 자동적 금본위제의 형성을 가져 왔다. 셋째, 재화는 방해도 특혜도 받지 않고 국가간에 자유롭게 이동되어야 한다. 이것은 국가에 의한 보호무역을 철폐한 1846년 [반곡물법안]에 의해 국제적 자유무역의 원리로 일반화되었다.

그런데 폴라니에 따르면 경제적 자유주의의 세 가지 원리, 즉 경쟁적 노동시장, 자동적 금본위제, 국제적 자유무역은 결코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국가에 의한 의식적 개입의 산물이었다. 자유시장은 단순히 모든 것을 그대로 방임함으로써 존재하게 된 것이 아니었다. 면직공업과 같은 주도적인 자유무역산업이 국가의 보호관세, 수출장려금, 간접적인 임금부조 등을 산파로 해서 출생했던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자유방임경제는 자연적으로 발생한 것이 아니라 의식적인 정부활동의 산물이었던 것이다. 자유시장으로 가는 길은 집권적으로 조직되고 관리되는 계속되는 간섭주의의 비약적 강화에 의해 개척되고 유지되었다. 강조 정도에서 차이가 있었지만 1832년 이후의 시기를 특징지어 왔던 입법활동의 순수한 성과는 근대공업의 설비만큼이나 수리, 갱신, 개조 및 새로운 조건에의 적응을 끊임없이 필요로 하는 고도로 복잡한 행정기구를 하나씩 설립시켜 왔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자유시장의 도입은 관리, 통제, 간섭의 필요성을 제거하기보다는 그 범위를 엄청나게 확대시켰다. 스피남랜드법을 통해 자본주의화를 막은 것도 국가였지만, 그것의 철폐를 통해 자본주의화를 촉진한 것도 국가였던 것이다.

경제적 자유주의는 일체의 국가간섭을 배제하고 시장의 자율적 조정에 의해 조화로운 사회질서를 형성하려는 사상으로 이해되었다. 그러나 폴라니는 경제적 자유주의자들이 시장의 확립을 위해, 그리고 일단 시장이 확립되면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주저하지 않고 '국가의 간섭'을 요구해 왔다는 사실을 밝힘으로써, '자유방임'이라는 경제적 자유주의의 신화를 파탄시켰다.

(5) 미래상

경제적 자유주의는 19세기 말∼20세기 초 자기조정적 시장의 붕괴 조짐이 나타나자 정치적 간섭을 통해 문제에 대처하였다. 자유방임적 시장사회의 실패에 대한 대응은 세 가지로 나타났는데, 첫째는 시장의 기능을 보완하기 위해 국가의 개입을 시도한 '뉴딜정책'이고, 둘째는 국가의 폭력을 통해 위기에 대처한 '파시즘'이고, 셋째는 시장사회를 전면 부정하고 국유화와 계획을 통해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고자 했던 '사회주의'였다.

경제적 자유주의는 국가개입을 통해 자기조정적 시장체계의 붕괴에 대처했고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시장사회 자체가 파괴되는 것을 막으려 했다. 그 결과 노동, 토지, 화폐는 더 이상 자기조정적 시장에서 자율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개입에 의해 인위적으로 규제되었다. 자유방임을 희생함으로써 시장제도를 회생시키는 것이 경제적 자유주의자들의 목적이었다. 결국 이들의 목적은 달성되었고, 20세기 말의 오늘날에도 여전히 시장제도는 건재할 뿐만 아니라, 전세계로 확장되었고, 다가올 21세기에도 여전히 그 기능을 발휘할 것으로 예견되고 있다.

그러나 폴라니는 시장이라는 유토피아를 폐기함으로써 자유를 실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시장은 인류역사의 긴 시간을 통해 보면 상대적으로 일시적이고 우연적인 제도에 불과하다. 그것은 만인의 자유가 아니라 선택된 소수의 자유만을 보장한다. 따라서 복합사회에서의 자유는 제도적 도덕적 종교적 규제와 통제를 통해 확대되는 그러한 자유이다. 모두에게 보다 풍부한 자유를 제공하는 임무에 성실하는 한 권력이나 계획화가 자유를 파괴할지도 모른다고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폴라니는 사회주의자였다.



4. 마르크스주의와 폴라니의 차이


계급간의 적대관계라는 관점을 지지하면서 자유주의자와 마르크스주의자는 동일한 입장에 서 있었던 것이다. 이 양자는 19세기의 보호주의는 계급행동의 결과이고, 그러한 행동은 무엇보다 우선 관련된 계급성원들의 경제적 이익을 위한 것임에 틀림없다는 주장을 펴기 위해 빈틈없는 이론을 확립했다. 그들에 있어서는 이 경제적 이익이라는 것이 시장사회 그리고 그러한 사회의 보호주의에 대한 전반적 성찰의 걸림돌이었다. 실제로 계급이익으로는 사회의 장기적 동향에 관해 제한된 설명밖에 할 수 없다. 사회의 운명이 계급들의 요구에 의해 결정되기보다는 계급들의 운명이 사회의 요구에 의해 결정되는 편이 훨씬 많다. - 폴라니, {거대한 변환}

종종 폴라니의 이론을 마르크스주의와 동일시하는 사람들이 많다. 비록 폴라니가 사회주의자였다고는 하지만 그의 사회주의는 마르크스주의의 그것과는 근본적으로 상이한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와 폴라니는 방법론, 분석의 초점(생산이냐 시장이냐), 국가와 시장의 관계, 계급 개념, 미래상 등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근본적인 차이점을 가지고 있다.

[ 요 점 2 ] 마르크스주의와 폴라니의 차이

1. 방법론 마르크스주의는 인류역사를 생산력 발전에 따른 단계적, 진화적 발전과정으로 봄.
폴라니는 경제적 결정론, 생산력주의, 진화주의 등을 거부함.
2. 분석의 초점 마르크스주의는 생산관계와 계급투쟁에 초점을 둠.
반면 폴라니는 '생산'이 아니라 '시장'에 주목하여, 19세기 사회의 특징을 한 마디로 '자기조절적 시장'으로 묘사.
3. 국가와 시장의 관계 마르크스주의는 국가를 자본가계급의 이익 실현을 위한 도구로 봄(시장 우위론).
그러나 폴라니는 국가의 주도적 역할에 의해 시장이 제한, 확대, 발전, 변형되어 왔다고 봄(국가 우위론).
4. 계급 개념 마르크스주의는 경제적 계급 개념.
폴라니는 문화적, 사회인류학적 계급 개념. 사회적 파국의 진정한 원인은 '경제적 착취'가 아니라 '문화적 환경의 붕괴'이다.
5. 미래상 마르크스주의는 계급착취와 대립이 사라진 공산주의사회를 지향.
폴라니는 '자유'가 실현된 인본사회주의를 지향. 이를 위해 '규제'를 통한 자유의 확대를 추구.


(1) 방법론

마르크스주의는 '방법론적 전체주의'(methodological holism)에 기초하고 있다. 이 입장에 의하면, 사회는 그것을 구성하는 일부가 그 자체로서 독특하지 않고, 상호작용하는 개인들의 행위로부터 생기는 법칙성이나 경향성으로부터 설명되어질 수 없다는 점에서 '전체'를 구성하고 있으며, 따라서 사회에 대한 설명은 사회적 관계, 사회적 속성을 통해 이루어져야 하며, 개인들의 행위 역시 사회의 구조적 효과로서 설명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폴라니의 방법론 역시 개인보다는 사회적 관계, 사회제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에서 마르크스주의의 전체주의적 방법론과 공통점을 갖는다. 이런 점 때문에 폴라니는 종종 마르크스주의자로 오인되기도 한다.

그러나 폴라니의 방법론은 '경제적 결정론'(economic determinism)을 거부한다는 점에서 마르크스주의와 명확히 구분된다. 원래 마르크스주의 이론에는 '사회적인 것'의 우위를 강조하는 사회학적 접근법과 경제적 법칙의 지배를 찾으려는 경제주의적 접근법 사이에 근본적인 긴장이 존재하고 있었다. 폴라니는 그의 헝가리 동료인 루카치(George Lukacs)의 영향을 받아 사회적인 것의 우위성을 인정하는 시각을 갖게 되었으며, 제2인터내셔널의 경제적 결정론에 대항해 싸웠다. 폴라니는 생산력의 발전이 인류역사발전의 원동력이라는 생산력주의(生産力主義)에도 반대했다. 그는 생산력의 발전에 따라 인류역사가 낮은 단계의 생산관계를 해체하고 보다 높은 단계의 생산관계를 수립하는 단계적, 진화적 발전의 과정이었다는 진화주의(evolutionism)를 명백히 거부했다.

예를 들어 폴라니는 호혜, 재분배, 교환이라는 통합의 세 가지 형태가 어떤 특정한 발전단계를 대변하지는 않는다고, 다시 말해 호혜→재분배→교환이라는 발전단계 도식은 타당하지 않다고 말했는데, 이것은 그의 반(反)경제주의적, 반(反)진화주의적 신념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폴라니의 방법론은 넓은 의미에서 제도주의(institutionalism)에 포함시킬 수 있다. 제도주의는 행위자(actor)와 사회제도를 동시에 고려하되, 행위자가 제도의 형성 및 변경에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제도가 행위자의 사상과 감정 및 행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결정론과 달리 제도주의는 행위자의 행동에 따라 사회 전체의 구조와 질서가 달라질 수 있다고 본다. 폴라니의 분석에서 중심은 "기본적인 생계를 보장해 주는 장치와 그 하위단위가 어느 정도 통합될 수 있도록 보장해 주는 장치"에 맞추어져 있다. 그는 개인이 아니라 개인의 행동이 일어나게 하는 제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예를 들어 그는 자유로운 교환을 수행하는 개인의 행동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시장기구라는 제도가 먼저 전제되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그의 분석은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상이한 형태의 제도들, 즉 호혜 재분배 교환이라는 통합의 형태에 대한 연구에 많은 비중을 할애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폴라니는 제도주의자이다.

결국 폴라니의 분석방법은 마르크스주의와 마찬가지로 총체적인 것을 강조하는 전체주의적 방법론에 입각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만, 경제주의 진화주의 생산력주의에 물든 마르크스주의와 달리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상이한 형태의 제도들에 관심을 집중했던 '제도주의'라는 점에서 마르크스주의의 방법론과 구별된다고 할 수 있다.

(2) 분석의 초점: 생산이냐 시장이냐

근대 자본주의사회에 대해 마르크스주의는 생산에 초점을 맞춘 반면, 폴라니는 시장에 초점을 맞추었다. 다시 말해 마르크스주의와 마찬가지로 폴라니도 자본주의사회의 경제적 측면에 주목하였지만, 그러나 양자의 차이점은 자본주의의 핵심적 특징을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하는 질문에 대해 서로 상이한 답변을 내린 점에 있다. 즉 마르크스주의는 생산과정과 그 속에서 맺어지는 자본-임노동관계에 주목한 반면, 폴라니는 자기조정적 시장의 출현에 주목하였다.

생산이냐 시장이냐? 이 질문은 자본주의사회를 분석하는 정치경제학의 핵심적 논쟁대상의 하나였다. 특히 중요했던 논쟁은 '돕-스위지 논쟁'이다. 영국의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였던 돕(M. Dobb)이 영주-농민관계인 봉건제로부터 자본-임노동관계인 자본제로 이행의 계기를 봉건제 내부의 계급투쟁에서 찾았던 데 반해, 미국의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였던 스위지(P. M. Sweezy)가 사용을 위한 생산체계였던 봉건제로부터 시장을 위한 생산체계인 자본주의로 이행의 계기를 상업(특히 원격지 상업)에서 찾음으로써 양자의 논쟁이 이루어졌다. 논쟁의 결론은 다수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생산관계와 계급투쟁을 강조한 돕의 견해를 지지하는 것으로 내려졌지만, 시장을 강조한 스위지의 견해를 지지하는 측도 적지 않았다.

폴라니는 자본주의사회를 인간사회의 가장 높은 단계가 아니라 인간성의 선사(prehistory)로 본 점에서 마르크스주의의 시각과 정확히 일치하고 있다. 또한 그는 자본주의가 위기의 폭력적 뒤틀림으로 끝난 체제이고, 사회통합의 근본원리들을 파괴해 온 병적인 체제였다고 보는 점에서 마르크스주의 이상으로 자본주의사회를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양자 사이에는 근본적인 시각의 차이가 존재한다. 마르크스주의는 자본주의사회의 가장 큰 특징을 자본가-노동자라는 생산관계에서 찾음으로써 그 논리적 귀결로서 계급투쟁을 강조하게 되었다. 반면 폴라니는 그 특징을 자기조정적 시장에서 찾음으로써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를 무계급사회가 아니라 시장이라는 유토피아를 넘어선 사회로 보았다. 이런 점에서 폴라니 이론은 마르크스주의와 근본적인 차이점을 갖는다.

(3) 국가와 시장의 관계

국가와 시장의 관계는 현대 국가론의 핵심적 주제의 하나이다. 논쟁의 초점은 국가가 시장에 종속되는가 아니면 시장이 국가에 종속되는가 하는 문제로 모아진다. 전자는 '시장 우위'의 관점이고 후자는 '국가 우위'의 관점이다.

마르크스주의는 경제적 자유주의와 마찬가지로 국가를 시장에 종속시켰다. 이들에게 국가란 단지 자본가 계급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한 계급지배의 도구에 불과하다. 반면 폴라니는 국가의 주도적 역할에 의해 시장이 형성, 발전, 제한되어 왔다고 주장한다.

정통 마르크스주의 국가관은 한 마디로 '도구주의적 국가관'이라고 할 수 있다. 국가는 비록 그것이 외견상 전체 국민의 이해를 대변하고 있는 듯이 보일지라도, 실제로는 소수 자본가 계급의 이익을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이르는 시기에 시장사회의 자기조정기능이 약화되고 붕괴의 위험에 직면하게 되자 국가는 과거와 달리 적극적으로 시장사회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국가는 기업가들의 요구를 제한하고 노동자들의 복지향상을 위해 노력하는 정책을 펼쳤다. 그에 따라 마르크스주의 영역 내부에서 국가를 단순한 계급지배의 도구로 보는 시각을 벗어나, 자본주의체제를 유지해 주는 구조적 행위자로 보는 시각이 대두되었다. 구조주의로 불리는 이 시각은 국가의 상대적 자율성을 강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각 역시 궁극적으로는 국가의 성격이 경제(생산관계)에 의해 결정된다고 봄으로써 정통 마르크스주의의 틀을 고수하고 있다.

폴라니의 국가관은 한 마디로 '국가 우위론'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국가 우위'란 국가가 모든 사회제도를 초월해 있다거나 시장을 뛰어넘어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반대로 모든 사회적 투쟁은 국가의 역사적 형태로 수렴된다는 의미이다. 즉 국가는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제도를 중점적으로 조직화한다. 그에 따라 국가권력은 시장의 힘에 종속되지 않을 뿐 아니라, 역으로 시장을 제한하고, 규제하고, 통제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국가의 권력의지가 강조된다. 국가는 시장을 확대할 것인가 제한할 것인가, 또는 강화할 것인가 변형시킬 것인가를 결정하며, 그 전략에서 한계는 없다. 폴라니의 국가관은 국가를 자유와 대립적인 것으로 설정하는 자유주의적 전통과 달리, 권력의 행사야말로 인간사회에 질서와 진보를 부여하는 본질적인 요소이며, 개인의 자유는 국가권력의 행사를 통해 비로소 실현될 수 있다고 본다.

폴라니의 국가관은 스피남랜드(Speenhamland) 법에 대한 분석에 잘 나타나 있다. 1795년 스피남랜드법은 임금등귀의 홍수로부터 농촌을 지키고, 농업경영자에게 과중한 부담을 지우지 않고, 사회적 파국으로부터 농촌의 기반을 지킬 수 있는 보호장치가 필요했던 당시의 절박한 요구로부터 제정되었다. 그러나 차츰 시장체계가 확대되어감에 따라 이 법은 노동생산성의 저하, 노동자의 노동기피로 인한 교구(perish)의 재정부담 증가, 대중의 프롤레타리아화 방지 및 지연 등의 결과를 가져왔다. 결국 스피남랜드법의 모순과 불합리성이 분명해진 1834년 '수정구빈법'(Poor Law Reform)에 의해 스피남랜드법의 '생존권 개념'이 폐기되었다. 이로써 노동자들은 스스로 자신을 돌보지 않을 수 없게 되었으며, 그 결과 근대적 노동계급의 진정한 탄생을 가져왔다. 이상과 같은 역사적 사례를 통해 폴라니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분명하다. 즉 농촌이 시장경제로 급격히 편입됨으로써 붕괴되는 것을 막기 위해 스피남랜드법을 제정한 것도 국가였고, 그후 시장경제를 확대하기 위해 스피남랜드법을 철폐한 것도 국가였다. 즉 국가는 자신의 필요에 따라 시장을 제한할 수도 있고, 반대로 확대할 수도 있다. 이것이 폴라니의 국가 우위론적 시각이다.

(4) 계급 개념

마르크스주의의 '경제적 계급' 개념과 달리 폴라니는 계급을 사회적て문화인류학적인 것으로 파악했다. 이런 이유에서 폴라니는 계급이란 경제적인 제도가 아니라 총체적인 문화적 폐해를 치유하기 위해 조직된 집단이므로 애초부터 협소한 경제적 이해관계를 넘어서는 것으로 보았다. 그러므로 사회의 자기보호운동은 기본적으로 문화적이고 사회적인 것이며, 경제적인 동기는 부수적인 것으로 보았다. 이런 맥락에서 그의 계급 개념은 계급을 역사발전의 궁극적 원동력으로 보는 마르크스주의의 그것과 근본적으로 상이한 것이다.

계급이익을 본질적으로 경제적인 것이라고 보는 똑같이 터무니없는 교리가 존재한다. 인간사회가 경제적 요인에 의해 조건지어지는 것은 당연하지만, 인간 개개인의 동기가 물질적 욕구충족의 필요에 의해 결정되는 것은 예외적일 뿐이다. … 욕구충족에 영향을 미치는 순전히 경제적 문제들은 계급행동보다는 사회적 인정의 문제에 훨씬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물론 욕구충족은 이와 같은 인정의 결과, 특히 겉으로 드러내는 인정의 몸짓이나 포상의 결과일지 모른다. 그러나 계급이익은 가장 직접적으로 신분과 서열, 지위와 안전 등과 관련되어 있으므로 경제적인 것이 아니고 주로 사회적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 폴라니, {거대한 변환}, 제13장.

폴라니에 따르면 단순한 계급이익만으로는 어떠한 장기적인 사회적 과정에 대해서도 만족스럽게 설명할 수 없다. 왜냐하면, 첫째로 바로 그 과정이 계급 자체의 존속여부를 결정하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고, 둘째로 주어진 계급이익은 그들 계급이 애써 노력하여 성취하려는 목표와 목적만을 결정할 뿐이지 그러한 노력의 성패여부까지 결정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역사무대에서 어떤 계급의 역할을 결정짓는 것은 궁극적으로 그 계급이 전체로서의 사회에 대해 갖는 관계이고, 어떤 계급의 성공여부는 자기자신의 이익과는 별개로 그들이 봉사할 수 있는 폭과 다양성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폴라니에 따르면 사회적 파국의 진정한 원인은 '경제적 착취'가 아니라 '문화환경의 붕괴'이다. 이런 시각에서 그는 1790년대 무렵 영국 노동자계급의 불운했던 상황을 경제적 측면이 아니라 사회문화적 측면에서 설명하려 한다. 경제적 자유주의자들이 제시한 통계에 따르면 이 시기 노동자계급의 생활수준은 공장제 도입 이전보다 훨씬 향상되었고, 인구수에서도 급속한 증가를 이루었다. 그렇다면 의심할 여지없는 경제적 개선을 이룩한 곳에서 어떻게 사회적 파국이 존재할 수 있었겠는가? 이 질문에 대해 폴라니는 사회적 재난은 소득이나 인구의 통계로 측정할 수 있는 경제적 현상이 아니라 주로 문화적 현상이며, 흔히 가정되는 경제적 착취가 아니라 '문화적 환경의 붕괴'가 진정한 파국의 원인이라고 대답했다.

(5) 미래상

폴라니는 '자유'가 실현된 '인본사회주의'(human socialism)를 미래상으로 제시한 점에서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마르크스주의와 공통점을 가진다. 그러나 그의 미래상은 프롤레타리아혁명, 계급독재, 계급철폐를 통한 무계급사회로서 공산주의사회 건설이라는 마르크스주의의 도식과 큰 차이점이 있다.

폴라니는 그의 사상적 발전과정 속에서 지속적으로 자유에 대한 관심, 일반서민 문화의 찬양, 인본사회주의의 추구 등을 시도해 왔다. 그는 자유주의적 자본주의 혹은 시장경제는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본성과 양립할 수 없다고 보고, 자본주의사회를 탈인격적, 물질적 시장의 힘에 의해 인간본성과 인간관계를 차단하는 부자유스러운 사회적 형태로 간주했다.

그러나 폴라니는 자본주의적 시장사회의 대안으로서 현존 사회주의의 중앙집권적 명령경제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명령경제의 비효율성 때문이 아니라, 그 체제의 선택의 부재와 따라서 인간에 대한 인간의 자유와 책임을 부정한다는 측면에서 그것을 수용할 수 없었다.

폴라니의 미래상은 충분한 자유가 보장되는 사회주의사회이다. 그는 {거대한 변환}의 마지막 장에서 자유에 대해 두 가지 수준의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첫째, 제도적 수준에서 자유의 확대와 축소를 균형 잡는 문제로서, 권리들을 효과적으로 만들기 위한 제도가 요구된다. 따라서 제도적 수준에서 규제와 통제를 통해 소수자만이 아니라 만인을 위한 자유를 실현해야 한다. 둘째, 도덕적 종교적 수준에서 계획화와 통제가 자유의 부정이라는 기존의 도덕적 장애물을 극복해야 한다. 자유주의자가 갖는 현실을 거부하는 환상적 자유 개념과 현실을 수용하고 자유를 거부하는 파시스트적 결론 양자 모두를 넘어서서, '규제를 통한 자유의 확대'를 추구해야 한다. 권력이나 계획화가 자유를 파괴할지도 모른다고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진정한 사회주의는 계획, 규제, 통제 등의 수단을 통해 자유라는 목적을 결정할 수 있는 그러한 사회체제이다.



5. 폴라니는 대안이 될 수 있는가


경제인류학에는 세 가지 패러다임, 즉 형식주의, 실질주의, 마르크스주의가 서로 경쟁하고 있다. … 한편으로 형식주의자와 마르크스주의자가 다른 한편으로 폴라니 그룹이 산업자본주의와 전(前)자본주의 경제 사이의 유사성이 차이점보다 더 중요한지 아닌지에 대해 전혀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다. 형식주의자와 마르크스주의자는 유사성을, 폴라니 그룹은 차이점을 강조한다. 형식주의 및 마르크스주의 인류학자들은 19세기 산업자본주의를 분석하기 위해 고안된 이론체계를 받아들인다. 그러나 폴라니 그룹은 미시경제학이나 마르크스주의 경제학 중 어느 것도 '시장교환에 의해 통합되지 않은 경제'의 중요한 속성을 밝힐 수 없다고 결론 내린다. - G. Dalton and J. Koecke.

폴라니의 이론은 크게 보아 다음의 두 가지 질문에 대답하기 위한 것이었다. 첫째, 형식적 미시경제이론이 인류학자와 역사가들이 연구하는 비시장경제를 분석하는 데 부적합한 이유는 무엇인가? 둘째, 비시장경제의 핵심적 속성은 무엇이며, 이러한 비시장경제의 조직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개념적 어휘가 필요한가?

이 두 질문에 대한 대답이 얼마나 성공적이었는가에 따라 폴라니의 이론의 가치가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필자의 생각에 폴라니의 이론은 적어도 형식주의적 미시경제이론의 문제점을 비판하는 데는 성공적이었지만, 시장을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대안, 마르크스주의와 다른 제3의 대안을 제시하는 데는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시각에서 폴라니의 이론의 장단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 요 점 2 ] 마르크스주의와 폴라니의 차이

공 헌 ① 경제적 자유주의 이론이 비시장경제를 분석하는 데 부적합함을 밝혔다.

② 19세기 시장경제를 국가의 개입에 의해 의식적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봄으로써, 시장에 대한 '국가의 우위'를 주장했다.

③ 사회적 파국의 진정한 원인이 계급적 착취가 아니라 문화적 환경의 붕괴에 있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한 계 ① 시장체계의 강한 생명력을 간과함으로써 시장의 빛나는 복귀를 예견하지 못했다.

② 국가의 우위성을 지나치게 강조한 결과, 자칫 국가의 모든 경제개입을 정당화시켜 줄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③ 방법론적으로 사회를 유기적 전체로 묘사함으로써 구조를 형성하는 능동적 존재인 행위자 요인을 간과했다.


(1) 폴라니의 공헌

첫째, 폴라니의 공헌은 경제적 자유주의 이론이 비시장경제를 분석하는 데 부적합하다는 사실을 밝힌 것이다. 그는 경제를 사람들과 공동체에 재화와 용역을 반복적으로 공급하기 위한 장치라고 정의하고, 실질적 의미의 경제와 형식적 의미의 경제를 개념적으로 구분하며, 비시장경제의 분석을 위해서는 실질적 의미의 경제 개념만이 타당한 도구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만약 경제적 자유주의자들이 트로브리앙(Trobriand), 누어(Nuer), 잉카(Inca)와 같은 비시장경제를 분석하기 위해 미시경제학의 가격이론의 개념용어를 사용한다면, 그것은 비시장경제의 본질을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점에서 왜곡하는 것이다. 첫째, 그것은 비시장경제와 산업자본주의 사이의 유사성을 과대평가하고 차이점을 과소평가한다. 양자는 근본적으로 상이한 조직원리에 의해 운영되는 경제체제이다. 둘째, 그것은 트로브리앙, 누어, 잉카 경제에서 중요하고 특징적인 것이 미국이나 일본의 산업자본주의에서 중요하고 특징적인 것과 다르다는 것을 알지 못하게 한다. 셋째, 그것은 비시장경제에서 대외교역의 기능과 화폐사용이 자본주의에서 대외교역 및 화폐와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게 한다.

결국 폴라니에 따르면 비시장경제의 핵심적 속성은 자본주의의 그것과 매우 다르고, 비시장경제의 구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형식주의나 마르크스주의가 아니라 특별한 패러다임 속에 특별한 개념용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필요에서 광범위한 문화인류학적, 고고학적 자료를 바탕으로 개발한 그의 용어가 호혜, 재분배, 교환이다.

이런 맥락에서 폴라니는 '자기조절적 시장'은 인류역사의 보편적 존재양식이 아니라, 단지 19세기라는 특수한 시대적 상황의 산물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시장을 인류역사의 미래를 이끌어 갈 영원한 사회제도로 보는 자유주의 이론은 일종의 '시장 유토피아'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폴라니는 시장을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대안을 찾으려 했다.

둘째, 폴라니의 공헌은 19세기 시장경제를 인간의 본성에 의해 자연스럽게 형성된 경제체제로 보지 않고 국가의 개입에 의해 의식적으로 만들어진 경제체제로 봄으로써, 시장에 대한 국가의 우위를 주장한 점이다. 국가와 시장을 양분하는 오랜 전통은 홉스, 로크, 루소, 헤겔 등 자유주의 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다. 사회계약과 절대정신의 객체화에서 비롯되는 '주권국가'와 인간본성에서 태어난 '자연시장' 사이의 구분이 그것이다. 마르크스주의 역시 국가와 시장을 구분한다. 정통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국가를 시장에 대해 수단적인 것으로 본다. 자유주의와 마르크스주의는 공통적으로 시장에 대한 국가의 개입을 해로운 것으로 본다. 자유주의자들은 국가의 개입이 시장의 자율적 조정기능을 약화시킬지도 모른다는 우려에서, 그리고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국가개입이 자본주의경제의 모순을 해결하려는 노동자계급에게 물리적 폭력으로 나타난다는 점에서 국가의 개입을 해로운 것으로 본다. 어쨌거나 자유주의자와 마르크스주의자는 공통적으로 '시장의 우위'를 주장하고 국가개입의 최소화에 동의한다. 그러나 폴라니는 시장에 대한 '국가의 우위'를 주장한다. 예를 들어 19세기 시장경제의 출현은 1795년 스피남랜드법의 제정이라는 국가의 개입에 의해 지연되었고, 1834년 수정구빈법의 채택으로 노동시장 형성의 장애물을 제거함으로써 더욱 가속화되었다.

셋째, 폴라니의 공헌은 사회적 파국의 진정한 원인이 계급적 착취가 아니라 문화적 환경의 붕괴에 있다는 사실을 지적한 점이다. 그는 계급을 경제적 맥락에서가 아니라 사회て문화적 맥락에서 정의하고, 19세기 초 영국의 노동자계급과 오늘날 아프리카 원주민들의 상황이 매우 유사함을 지적했다. 즉 원주민 사회의 파국은 경제적 착취 때문이 아니라, 기본적 제도들이 급격하고 격렬하게 붕괴된 직접적 결과였다. 마찬가지로 19세기 후반의 인도 대중은 랭카셔에서 착취당했기 때문에 굶어죽은 것이 아니라, 인도 촌락공동체가 파괴당했기 때문에 대량으로 아사한 것이다. 세포이 반란 이후 영국통치 아래 인도를 휩쓸었던 3∼4회의 대기근은 자연력의 결과나 착취의 결과가 아니라, 실제로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채 구래의 촌락을 해체시켰던 새로운 노동과 토지의 시장조직의 결과일 뿐이다. 봉건제도와 촌락공동체 제도 아래서는 신분에 수반된 의무, 씨족적 연대, 곡물시장의 통제 등이 기근을 막아주었지만, 시장의 지배 아래서는 게임의 규칙에 따라 사람들이 기근을 면할 수 없었다. 이것은 오늘날 폴란드에서 발생하고 있는 실업, 인플레이션, 사회범죄의 만연과 같은 파국적 상황의 원인을 설명하는 데도 타당하다. 그 원인은 폴란드에 새로 도입된 시장제도의 착취적 성격 때문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노동과 토지, 화폐의 상품화가 나타나 과거의 모든 문화적 제도들이 일소되었기 때문이다. 사회주의 하에서 폴란드 국민들은 생활수단을 얻는 대신 자유와 문화를 포기했다. 많은 사람들이 추위에 떨었지만, 얼어죽지는 않았다. 그러나 시장사회주의를 향해 나아가는 지금의 폴란드는 자유주의적 원자화에 의해 각 개인들이 어떠한 제도적 유대나 보호도 없이 경쟁의 세계에 내던져지게 되었다. 그 결과 그들은 얼어죽을 자유(free to freeze)를 가지게 되었다.

(2) 폴라니의 한계

첫째, 폴라니 이론의 가장 큰 한계는 시장체계의 강한 생명력을 간과한 점이다. 폴라니는 19세기 말 국제금본위제의 붕괴 이후 자기조절적 시장이 극도의 위기를 맞았으며, 파시즘-사회주의라는 반(反)시장적 대안들에 의해 대체되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20세기 말의 현재까지도 시장은 건재하다. 시장이 이렇게 강한 생명력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국가의 개입에 의해 노동자들의 복지증진과 같은 대폭적인 양보를 함으로써 시장 자체가 붕괴되는 것을 막았기 때문이다. 반면 반시장적 대안들 가운데 파시즘은 제2차 세계대전의 패배와 함께 막을 내렸고, 사회주의는 오랜 역사적 실험을 끝내고 1980년대 후반부터 시장을 향해 자신의 모습을 바꾸기 시작했다. 21세기를 앞둔 오늘날 폴라니의 이론은 시장의 빛나는 복귀를 예견하지 못한 점에서 가장 큰 문제를 지적할 수 있다.

둘째, 폴라니 이론의 문제점은 국가의 우위성을 지나치게 강조한 결과, 자칫 국가의 모든 경제개입을 정당화시켜 줄 위험성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자유주의 경제학자인 그렌디(E. Grendi)는 다호메이(Dahomey)에 대한 정치영역의 찬양을 통해 폴라니가 정치문화적 함의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것은 전시경제의 요청으로부터 나온 계획경제의 성공까지도 강조하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비판한다. 또한 허쉬만(A. Hirschman)은 폴라니가 시장의 가치를 거부하고, 전후 시장의 자기파괴적 경향에 의해 고안된 경제계획을 옹호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결국 정치우선주의의 지나친 강조는 역으로 국가에 의한 경제독점과 중앙집권적 계획을 모두 정당화시켜 줄 위험이 다분히 존재한다고 하겠다.

셋째, 방법론적으로 폴라니의 이론은 사회를 유기적 전체로 묘사함으로써 그 내부에서 구조를 형성하는 능동적 요인인 행위자 변수를 간과한 측면을 지적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그는 자기조절적 시장의 출현은 내적 행위자들의 필요에 의해 생겨난 것으로 묘사하지 않고, 대외교역이라는 외부적 요인을 빌어 설명하고 있는데, 이것은 오늘날 유행하는 합리적 선택이론(rational choice theory)의 기본가정과 명백히 반대되는 설명양식이다. 또한 그는 계급을 사회구조에 의해 영향을 받는 피동적 존재로만 묘사할 뿐, 역으로 계급이 사회구조에 영향을 주고 있는 점을 언급하지 않고 있다. 행위자와 구조 사이의 역동적 관계를 연구하는 것은 오늘날 사회과학의 기본적 관심주제 중의 하나이다. 그런데 폴라니의 이론은 구조적 요인을 강조한 나머지 행위자 요인을 경시한 점에서 방법론상의 결함을 갖는다고 하겠다.



6. 맺음말


이상의 논의를 정리하면서 끝으로 다음의 두 가지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첫째, 폴라니의 이론은 '경제적 자유주의'나 '마르크스주의'와 근본적으로 다른 독특한 접근법이다. 폴라니의 이론은 방법론, 분석의 초점, 경제의 개념, 통합의 형태, 국가와 시장의 관계, 계급 개념, 미래상 등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경제적 자유주의 및 마르크스주의와 상이한 접근법을 취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폴라니의 이론은 마르크스주의의 한 분파(分派)로 분류될 것이 아니라 하나의 독자적인 패러다임으로 분류되어야 한다. 이미 경제인류학 분야에서 폴라니의 이론은 실질주의(substantivism)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형식주의(formalism), 마르크스주의(Marxism)와 함께 3대 주요 접근법의 하나로 인식되고 있다.

둘째, 폴라니의 이론은 적어도 경제적 자유주의의 문제점을 비판하는 데는 성공적이었지만, 시장을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대안, 마르크스주의와 다른 제3의 대안을 제시하는 데는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현재적 의미에서 폴라니의 이론은 제한적 유용성만을 가진다. 특히 폴라니의 이론은 시장체계의 강한 생명력을 간과했다는 치명적 결함을 포함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에 대한 국가의 우위성(경제에 대한 정치의 우위성), 경제의 실재적 의미와 형식적 의미의 구별, 경제적 계급이 아니라 사회문화적 계급 개념 등 여러 측면에서 그는 적지 않은 학술적 공헌을 남겼다.

한국에 폴라니의 저작이 소개된 것은 최근의 일이지만, 국가와 시장의 관계, 경제적 자유주의의 문제점, 개인의 자유와 정치적 규제의 결합을 고민하는 많은 연구자들에게 그의 이론은 적지 않은 시사점을 제공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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