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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사논문


의회의 제도화와 국회
-1993년 2학기 의회정치론 제1보고서-
담당교수: 박 찬 욱 선생님
제출일: 1993년 11월 9일 (화)
제출자: 서 창 녕



1. 서론 | 2. 의회의 제도화 개념과 수준 | 3. 국회의 위상과 제도화 수준 | <참고문헌>

#. 이 글은 의회의 제도화 수준을 분석하기 위한 이론적 틀을 제시하고, 이 틀을 적용하여 국회(한국의 의회)의 위상과 제도화 수준을 분석해 보려는 하나의 작은 시도이다.



1. 서론


의회는 대체로 선거를 통해 선출되어 그 정치공동체의 구속력 있는 법률을 합의로써 제정하는 대표자들의 상설회의기관이다. 다시 말해 의회는 임명 또는 세습하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선거를 통해 선출되는 의원들로 구성되고, 위원회나 본회의에서 집단적 심의와 표결을 통해 정치공동체 내에서 구속력 있는 법률을 제정하는 역할을 하며, 중도에 해산 또는 폐지되기도 하지만 본래 상설기관으로 출발한 회의기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알려진 의회제도는 중세유럽에서 '국왕의 협의기관'으로 시작된 역사적 진화의 산물이다. 17세기 중엽, 영국에서 청교도혁명과 명예혁명을 거치면서 입법권의 담지자라는 위상을 확립한 의회는 1832년 제1차 선거법 개정 이후 황금기를 맞이하였지만, 19세기 말엽 이후 정당조직의 강화, 행정부 기능의 확대 등으로 서서히 쇠퇴하기 시작하여, 1920-30년대에 이르러서는 '의회쇠퇴론'으로 집약되어 나타났다. 그러나 의회쇠퇴론은, 첫째 의회가 정책제안단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게 줄어들었으나 제출된 정책에 대한 심의-확정기능과 행정부에 대한 감독기능을 간과하고 있고, 둘째 의회의 정책기능 이외에 대표-통합기능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하고 있으며, 셋째 능동적 역할 이외에 제출된 안건을 논의하고 결정하는 반응적 역할을 간과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판받고 있다.

의회의 유형분류는 학자에 따라 조금씩 견해 차이가 있다. 1) 폴스비(N. Polsby)는 변형능력의 수준이라는 단일차원에서 의회를 변형능력보유(transformative)형과 경합장(arena)형의 두 유형으로 분류했고, 2) 와인바움(M. G. Weinbaum)은 결정능력과 통합력이라는 두 차원에서 의회를 하위(subordinate)형, 조정(coordinate)형, 경쟁적 우위(competitive-dominant)형, 종속(submissive)형, 부정(indeterminate)형의 다섯 유형으로 분류했으며, 3) 메지(M. L. Mezey)는 정책형성력과 의회에 대한 지지도에 따라 의회를 능동(active)형, 취약(vulnerable)형, 반응(reactive)형, 주변(marginal)형, 극소기능(minimal)형의 다섯 가지 유형으로 분류했다.

메지의 분류에 따르면, 한국의 의회는 '주변적 의회'에 속한다. 주변적 의회는 능동적 의회나 반응적 의회보다는 심의능력이 약하고 극소적 의회보다는 심의능력이 강한 중간 수준의 정책형성력을 갖고 있는 의회로서, 행정부 안(案)에 대한 대안제시나 거부가 쉽지는 않으나 어느 정도 의미 있는 수정은 할 수 있고 국민의 지지가 약한 경우의 의회이다. 이 경우 의회는 정책기능보다 주로 정부와 시민 사이를 연계하는 통합기능(integration function)을 하고, 정부정책에 대해 유권자들의 관심을 높이고 시민들로부터 정부정책에 대한 순종을 얻는 중개자 역할을 한다. 한국 의회는 주변적 의회에서 반응적 의회, 즉 행정부에서 제출한 법안을 심의하고 검토하는 '심의기구로서의 의회'(deliberating legislature)로 변모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의회는 한편으로 자신의 일을 처리하는 독특한 절차와 규칙, 다양한 내부조직과 전문기구들을 갖추어 나가고, 다른 한편으로 행정부, 법원 등 다른 조직들과 구별되는 자신만의 고유한 특징들을 갖게 된다. 이와 같이 의회가 자신의 고유한 기능과 역할을 갖추고 발전시켜 나가는 과정을 '제도화'(institutionalization)라는 용어로 설명할 수 있다. 그런데 제도화라는 개념은 학자에 따라서 정의가 상이하고, 또한 제도화 수준을 측정하는 기준의 선택에서도 서로 차이가 있다. 이 글에서는 먼저 제도화의 개념과 제도화 수준의 측정을 위한 기준에 관해 살펴보고, 다음으로 그 분석틀을 적용하여 한국 의회의 위상과 제도화 수준을 분석해 보도록 하겠다.



2. 의회의 제도화 개념과 수준


(1) 뢰벤베르크 & 패터슨

의회가 자신의 기능을 수행하는 일정한 방식을 갖게 되었을 때, 그 과정을 제도화라는 용어로 부를 수 있다. 일정 시간이 지난 후 의회는 일을 처리하는 독특한 절차, 관리와 위원회의 내적 조직, 구성원들 사이의 관계를 규정하는 비공식적 기준을 갖게 된다. 이러한 조직적 속성은 특정한 시기에 특정한 개별 의원들과는 독립적으로 존재하며, 의회가 취급하는 이슈와도 독립적으로 존재한다. 고도로 제도화된 의회는 조직적 관성을 갖는다. 그것은 과거 해 온 그대로 유지하려 하며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

의회의 제도화에 기여하는 두 요소는 인간의 관습과 조직적 복잡성이다.

1) 인간의 관습(human habit): 의원은 다른 인간과 마찬가지로 습관적으로 자신의 일을 발전시킨다. 의원생활기간이 길수록 그들의 방식이 정착될 것이다. 초년의원이 적을수록 그들은 그들의 선배의원들로부터 관례를 배울 것이다. 관습적인 행동, 제도화의 수준에 대한 지표로 의회의 회기가 바뀔 때 구성원들의 연속성 여부를 찾아 볼 수 있을 것이다. 영국의 경우 발견해 낸 방대한 양의 절차(procedure)들이 관례를 이루어 전문의회인에 의해 보관되고 토론사본에 기록됨으로써 비공식 관습이 된다. 미국은 과거 영국의 전통을 이어받으면서도 새로운 자신들의 관례와 규칙을 영국의 복잡성에 비교될 만큼 만들어 내었다. 반면 케냐의 경우 영국의 경험을 배워 왔지만 영국의 관습법 전통 때문에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료의 축적에 실패하고 있다. 독일의 경우 명백한 절차와 관료가 제시하는 해석에 크게 의존한다.

2) 조직적 복잡성(organizational complexity): 조직적 복잡성은 의원들이 무엇이 적절한 행동인가에 대한 비공식적 기대를 발전시켜서 위원회, 당대회, 절차법, 관례, 행동규정 등 제도가 그 기능을 수행하기 쉽게 방법을 확정해 놓은 것이다. 공식, 비공식 규칙의 양과 내적 구조의 규모 정도를 살펴봄으로써 의회의 제도화 수준을 가늠해 볼 수 있다. 이 기준으로 보면, 미국처럼 상임위원회와 소위원회들이 많으면 고도로 제도화된 의회를 갖고 있는 셈이 되며, 케냐처럼 일당체제에 상임위원회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 경우는 반대의 예가 된다.

(2) 폴스비 & 히빙

폴스비에 따르면, 제도화된 조직은 다음의 세 가지 주요 특징을 가진다.

1) 경계의 유지(boundary-maintenance)

다른 주위 환경과 구별되는 분명한 경계선을 갖는다. 조직의 구성원들은 쉽게 신원확인이 되고, 새로 구성원이 되기는 상대적으로 어려우며, 조직의 지도자는 원칙적으로 조직의 내부에서 충원된다. 제도화되지 않은 조직은 회원으로 가입하고 탈퇴하는 것이 비교적 쉽고 빈번하며, 지도자가 신속히 부상하고, 외부에서 불쑥 들어와 조직의 지도자를 맡는 경우(lateral entry)가 아주 흔하며, 지도력이 오래 지속되는 경우가 드물다. 반면 제도화된 조직은 회원으로 가입하기가 어렵고 변경이 드물며, 지도력은 전문화되고 오래 지속되며, 지도자의 충원은 내부에서 이루어지고 견습기간이 길어진다.

미국 하원에서 경계의 설정은 구성원의 안정화와 지도력의 전문화라는 두 측면 모두에서 나타나고 있다. 미국의 경우 18-19세기에는 의원들의 약 50%가 교체된 반면 20세기에는 단지 20% 정도만이 교체되고, 현직 의원들의 재임 횟수도 대략 1-2회에 불과했던 것이 20세기에는 3-5회 재임하고 있다. 또한 19세기에는 의장으로 선출되기 전에 의원으로 활동한 기간이 대략 1-16년(평균 6년)이나 되었던 반면 20세기에는 15-24년(평균 26년)으로 활동기간이 길어졌다. 전문화된 의회 지도자, 선임자 우대제도의 증대, 새로운 성원 유입의 감소 등으로 미 하원은 다른 정치조직들과 구별되고 조직의 업무 수행에서 안정성이 증대되었다.

2) 내적 복잡성(internal complexity)

제도화된 조직은 내부적으로 명확한 역할분담이 이루어지고, 각 부분들은 상호독립적이며, 전문화된 업무수행에 관한 광범위한 공유가 이루어진다. 의회의 내적 복잡성의 증대는 다음 세 가지, 즉 첫째 위원회의 자율성과 중요성의 증대, 둘째 정당의 전문화된 기구의 성장, 셋째 의원 봉급의 인상과 사무실, 수당, 참모진, 위원회직 등 보조적인 혜택의 증대 등을 통해 알 수 있다.

①위원회: 미국의 경우 초기에 의회는 상임위원회에 거의 의존하지 않았는데, 예를 들어 버지니아 의회에서는 본회의에서 먼저 법안이 처리된 후 세부사항들이 해당 위원회로 회부되어 처리되었는데, 반면 오늘날에는 많은 법안들이 차례대로 법률에 그 권한이 명시된 해당 위원회로 회부되어 처리된다. ②정당: 역사적으로 고찰해 보면 미국은 정당의 전문화된 기구들이 성장하는 뚜렷한 모습을 살펴 볼 수 있다. 19세기에는 의회 지도자가 비공식적으로 지명되었지만 20세기에는 공식적으로 지명되고, 예전에는 의회 지도자가 주요 위원회의 위원장이었지만 현대에는 위원회 제도로부터 분리되고 정당원들의 선거를 통해 선출되며, 1879년 이전에는 공식적으로 임명된 원내총무가 없지만 오늘날 정당 지도자는 원내총무제도에 의존하고 있다. ③자원: 조직의 복잡성의 증대를 측정하는 세번째 지표는 의회의 내부 운영에 할당된 자원의 증대 여부이다. 의회에 부과된 업무가 증가함에 따라 참모진의 숫자와 규모가 크게 늘어나고 있고, 의회에 할당된 입법 예산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3) 보편적이고 자동적인 내부 의사결정(universalistic-automated internal decision making)

제도화된 조직은 업무수행에서 특수적이고 자의적인 기준이 아니라 보편적이고 자동적인 방법을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예전의 정실인사나 친인척 편애 관행은 능력본위제로 대체되었고, 인간적 선호는 비인격적 규칙으로 대체되었다.

미국의 경우 ①선임자 우대 제도(seniority system)의 정착: 위원장 선출에서 선임자 우대에 따르지 않는 경우가 1881-89년 사이에 60.4%이던 것이 1941-49년 사이에 14%로, 1951-63년에는 0.7%로 격감했다. ②선거무효소송(contested election)의 격감: 1795-1905년까지 정당간 경쟁과 대결로 얼룩진 선거무효소송이 빈번히 제기되었으나, 오늘날 대규모 선거부정은 없으며 선거무효소송 건수가 1849-1918년 사이에 23-87건까지 발생하던 것이 1959-64년 사이에는 단지 8건만 발생했고 또 만약 분쟁이 발생하면 정당에 상관없이 현직에 있는 사람을 보호하는 것이 관례이다.

히빙에 따르면, 폴스비의 제도화 개념과 세 가지 지표가 미국 의회에는 타당하지만 영국 의회에는 불만족스럽다. 몇 가지 예를 들면, 영국 의회에서는 위원회가 거의 발달하지 않았고 미국 의회에서는 정당의 발전이 매우 지체되었다. 영국에서는 의원의 교체율이 16-17세기에 이미 급속히 감소하기 시작했지만 제도화의 다른 측면들은 훨씬 이후에 생겨났다. 미국에서는 지난 20년 동안 교체율이나 행동규범의 준수 등 많은 제도화 경향들이 역으로 혹은 적어도 중단되어 버렸다. 1968년 이전에 미 하원에 대해 폴스비가 발견한 제도화 지표들은 일반적 법칙이라기보다 오히려 예외적 현상에 가깝다. 따라서 폴스비가 제시한 제도화 지표는 일반성을 상실하게 되었다. 그 대안으로 조직이론(organizational theory)을 제기할 수 있지만, 조직이론 역시 단점이 많은 이론이다.

(3) 그룸

헌팅턴(Samuel P. Huntington)은 제도화를 "조직과 절차가 가치와 안정성을 획득해 가는 과정"이라고 정의하였다. 이 말에는 제도화된 체계가 더 안정되고 적응력이 높다는 뜻이 담겨 있다. 그러나 헌팅턴의 제도화 개념은, 첫째 체계는 생존하는 것 이상의 무엇을 해야 하며 안정성과 적응력이 체계수행능력을 평가하는 궁극적인 기준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점, 둘째 구조적 복잡성과 자율성, 응집력이 적응성과 안정성을 증진시키는지는 알 수 없다는 점, 셋째 이 모든 것을 인정하더라도 적응성을 어떻게 측정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가 있다는 점에서 비판된다.

아이젠슈타트(Eisenstadt)는 제도화를 "사회생활의 주된 영역에 고유한 특별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사회적으로 미리 규정된 차별화된 행동들의 체계화"라고 정의하였다. 그의 정의에서 제도화는 문제해결능력을 통해 측정될 수 있는 종속변수로 간주된다.

그룸(John G. Grumm)은 제도화를 "정치구조를 사회구조와 일치시키고, 정치제도와 사회적 환경 사이의 의사소통을 최대화하기 위한 정치구조의 합리화"라고 정의한다. 제도화 개념은 두 가지 측면과 관련되어 있다. 첫째는 환경 또는 다른 체계와의 관계라는 관점에서 정치구조의 개방성, 접근정도, 커뮤니케이션 채널, 사회체계와의 통합정도 등을 살펴보는 것이다. 둘째는 내적 관계의 합리화와 정보흐름의 효율적인 사용 등과 관계된 것들이다. 체계의 개방성과 관련해서는 의원의 충원 여부를 볼 수 있다. 의회체계의 내적 제도화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대표의 체계와 정책결정과정을 살펴보면 된다.

결론적으로 그룸에 따르면, 첫째 제도화는 의회의 반응능력에 영향을 미치며, 둘째 제도화 개념과 정치적 분화 개념은 서로 조합되어서는 안되고 이 두 개념의 분리는 대단히 의미 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룸이 제시한 정치적 분화의 지표는 제도화의 지표와 크게 다르지 않다.

(4) 도드

도드(Joseph W. Dodd)는 헌팅턴의 개념을 받아들여서 제도화를 "조직체가 가치와 안정성을 획득하는 과정"이라고 정의한다. 제도화의 수준을 측정하기 위한 지표로서 도드는 헌팅턴의 지표와 폴스비의 지표를 종합해서 네 가지 지표를 제시하고 있다.

  • 헌팅턴: 자율성, 적응성, 복잡성, 일관성

  • 폴스비: 경계의 설정, 내적 복잡성, 보편적-자동적 의사결정

  • 도드: 자율성, 복잡성, 일관성, 보편적-자동적 의사결정

    제도화라는 것은 조직체의 외적 환경과 분리된 내적 특성인가, 아니면 환경과 관련된 근본적으로 외적인 특성인가? 폴스비의 경계설정은 외적 특성에, 내적 복잡성과 보편적-자동적 의사결정은 내적 특성에 속한다. 헌팅턴의 자율성과 적응성은 외적, 복잡성과 일관성은 내적 특성에 속한다.

    (5) 레오나르디

    의회의 제도화(institutionalization of parliament)는 정치체계 내에서 의회가 정책작성의 중심부로 역할하는 것이고, 정당의 의회화(parliamentarization of parties)는 정당 행동의 주된 초점이 의회의 역할로 모아지는 것이다. 제도화와 의회화의 과정은 전자가 후자의 전제가 되는 연속적 관계, 즉 제도화에 기반하여 의회화가 달성되는 그러한 관계이다.

    레오나르디는 제도화를 "첫째 정당, 관료, 국영기업, 이익집단 등 다른 정치세력들과 비교하여 공공정책 작성에서 의회가 갖는 자율성이 증대하는 것, 둘째 의회 내부의 정책작성의 규칙과 과정에 관한 합의가 존재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이탈리아 의회는 1971년 이전까지 이데올로기적으로 좌와 우로 양극화되어 있었기 때문에 어떠한 합의도 만들어 내지 못하였다. 의회는 정치체계 내에서 권력과 정책작성의 중심부가 아니었고, 대신 그 역할은 정당, 정부관료, 국영기업체 등에 의해 수행되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이데올로기적 양극화는 의회의 자율성을 위축시키고 의회의 제도화를 가로막았다. 그러나 1971년 이후 이탈리아 의회에는 중요한 변화가 일어났다. 첫째, 기민당원뿐만 아니라 공산당원도 하원 의장이 되는 등 의회 직책의 재배분이 있었다. 둘째, 의회는 상임위원회와 특별위원회를 통해 여러 감사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셋째, 의회는 행정부 통제를 강하게 하고 있다. 넷째, 의회 내 각 정당의 대표들로 구성되는 '의회 그룹 지도자 회의'(capigruppo)가 생겨 정당 지도자들은 의회 내 각 기구의 위원장 및 행정부 대표들과 만나 3개월간의 법률 프로그램과 2주일 간격의 세부 일정을 협의하게 되었다. 다섯째, 의회는 지방자치법, 도시분권법 등 주요한 법률을 제정하였다. 이상 다섯 가지 영역에 걸친 변화의 결과로 1971년 이후 이탈리아 의회는 더 이상 이데올로기 충돌의 장이 아니라 협상과 타협을 통해 정치적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제도화된 기구가 되었다. 이러한 제도화를 바탕으로 기민당과 공산당 등 주요 정당의 의회화가 이루어졌다.

    (6) 오펠로

    제도화 연구에는 두 가지 전략이 존재한다.

    첫째, 입법역할에 대한 분석(role analysis)이다. 이 관점에서 볼 때 의회가 입법체계의 부분을 구성하는 각 개인들의 행위에 방향을 부여하는 역할들의 상호연관된 체계라면, 하나의 의회는 제도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둘째, 입법부의 조직적 속성에 대한 분석이다. 이 접근전략에 동의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의회의 제도화와 존속능력을 자율성, 복잡성, 보편성의 정도에 맞추어 본다. 자율성(autonomy)이란 입법부가 다른 정치제도와 사회집단으로부터 분리된 정도를 말하고, 복잡성(complexity)이란 입법부 내부의 구조가 분화되고 특화된 규정에 따라 작동하며, 노동분업이 널리 공유된 역할기대에 따라 이루어질 때를 말한다. 보편성(universalism)이란 내적 규칙과 결정작성이 개성이나 특수이익이 아닌 독특한 절차와 전례에 따르는 정도를 말한다.

    이 기준을 적용하여 포르투갈 의회를 살펴보면, 포르투갈에서 의회는 부차적 성격을 가졌고, 그것이 10여년 전에 생긴 이래로 정책작성과정에서 특별히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였다. 포르투갈 의회는 의원의 교체율이 평균 50.7%에 이르고, 위원장의 교체율이 높고 전문성과 능력도 결여되었으며 위원회의 내적 복잡성을 말할 수 없고, 보편적인 결정작성을 위한 절차적 규칙에 대한 동의가 적다. 이런 점에서 포르투갈 의회는 제도화 수준이 낮다고 하겠다.

    3. 국회의 위상과 제도화 수준


    (1) 국회의 제도화 수준에 대한 평가

    국회의 제도화 수준을 자율성(autonomy), 복잡성(complexity), 보편성(universality)의 세 가지 차원에서 분석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자율성이 매우 낮다

    국회는 행정부의 시녀 혹은 거수기 역할을 하는 곳으로 인식될 만큼, 국회의 자율성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국민들의 의식조사 결과 "국회가 국정의 중심이 될 수 없다"는 의견이 65.1%로 높게 나오고 있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또한 국회는 행정부를 잘 견제하지 못한다는 견해가 그렇지 않은 경우와 60 대 7의 비율로 크게 나타나고 있다. 게다가 의원들 상호간의 관계에서도 서구와 같은 수평적 규율이 없고, 수직적 관계를 나타내고 있다. 그 결과 국회의 자율성은 매우 낮은 편에 속한다.

    2) 내적 복잡성이 낮다

    국회는 상임위원회 활동 부진하고 전문성이 결여되어 있다. 최근 위원회 활동이 활성화되는 기미가 있는데, 이는 의회의 제도화를 위해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다.

    3) 보편성이 낮다

    한국의 국회의원들은 지역구 유권자들과 후견인-수혜자 관계(patron-client relationship)와 같은 사인주의(私人主義)적 요인에 의해 연계를 형성하고 있다. 의원들이 적절한 정책의 구현보다 개인민원, 지역사업 등 특정한 혜택을 베푸는 가부장적 자세를 보이는 상황에서 의원들의 일반적, 보편적 활동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이상의 이유로 그 동안 한국 국회는 저조한 국정심의 능력을 보여 주었다. 제6공화국에 들어서면서 대통령의 국회해산권 폐지, 국정감사권 회복, 청문회 제도의 도입 등이 이루어짐으로써 적어도 제도적 조건으로 볼 때 제6공화국 국회는 이전의 국회에 비해 그 기능이 활성화될 수 있는 좋은 조건을 구비하였다. 그러나 13대 국회 중반 이후 여야의 물리적 대결양상과 주요 법안들의 파행처리, 쟁점법안의 일방강행통과 등은 한국 국회의 심의능력이 답보를 거듭하고 있음을 보여 주었다.

    한편 14대 국회는 문민정부의 출범을 맞아 개혁을 추진해 나가야 할 주체가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의원구성의 측면에서 구 민정계, 대구-경북고(T. K.) 인맥, 구 공화계 등 개혁의 대상이 되어야 할 의원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음으로 인해 오히려 개혁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이에 따라 14대 국회는 단지 절차상의 제도화 문제뿐 아니라 내용적 측면에서도 민주화와 개혁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2) 개선책

    한국 국회의 문제점을 바로 잡고 국정심의능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점들이 개선되어야 한다.

    첫째, 국회활동을 상설화하여야 한다. 국회는 비록 회기를 단위로 활동하지만, 상시적으로 운영되는 행정부를 감독하기 위해서는 실질적으로 상설화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개원이나 회의소집 자체가 협상의 대상이 될 수 없도록 임시회도 정기회처럼 법정일에 개시하도록 하는 방법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의원의 자율성을 강화하여야 한다. 책임정치의 구현을 위해 어느 정도의 정당기율은 필요하겠지만, 우리 국회에서와 같이 지나친 정당기율은 의원 개인의 창의성과 국회의 자율성을 저해하여 정책심의능력을 저하시킨다. 공천제도, 정치자금제도, 선거제도의 개선과 더불어 법안이 의회에 공식 제출되기 이전에 소속 정당 의원들 사이에 충분한 검토와 의견교환이 이루어질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셋째, 위원회 제도를 내실화하여야 한다. 현재의 짧은 위원회 소속 임기, 여야의 확연한 구분과 엄격한 정당기속은 위원회 제도의 활성화를 저해하고 국회의 심의능력을 약화시킨다. 정책심의의 업무분담과 전문화, 정당소속을 넘어서는 의원들간의 집단적 연대감의 형성을 위해서는 이런 요인들의 개선이 필요하다.

    넷째, 졸속입법의 방지책을 마련하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예산과 관련이 없는 법안은 임시회에서 처리하고, 위원회 의결이 상정당일에 이루어지는 것을 금지하며, 공청회를 자주 개최하는 것 등이 필요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한국 국회의 제도화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는 정당의 정책개발능력을 향상시키고, 의원의 전문성을 제고하여 명실상부한 위원회 중심주의를 실천하며, 원내에서 타협의 관행을 정착시키고, 공천 및 정치자금제도를 개선하고, 입법보좌기구와 요원을 확충해 나가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길승흠, 김광웅, 안병만 공저, [한국선거론] (서울: 다산출판사,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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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찬욱, "국회의원과 선거구민간의 연계과정," 안청시 편, [한국정치경제론] (서울: 법문사, 1990), pp. 165-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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