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아사달 | 경제86 | 게시판 | Email 
서창녕은 아사달인터넷 정치학 취미생활 사진모음 링크 방명록
 
전공시험
        정치사상
        정치이론
        정치과정
        비교정치
        한국정치
        국제정치

석사논문
레포트모음
로체스터대학교


석사논문




한국정치의 인맥, 사조직 연구

이 글은 서창녕(徐唱寧)이 서울대학교 대학원 정치학과 석사과정을 수료하고 석사학위논문을 준비하면서 쓴 글로서, 제5공화국 전두환 정권의 '하나회 인맥'과 제6공화국 노태우 정권의 'T.K.인맥'을 다룬 글이다. 이 글은 <서울대학원신문> 제23호(1993년 3월 16일 화요일, 서울대학교 대학원 자치회 협의회 발행, 제4면)에 실렸던 것이다.



< 차 례 >


1. 한국정치의 특징 - 인맥정치
top

한국정치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 중의 하나는 이념이나 정책보다도 혈연, 지연, 학연에 기반을 둔 인맥과 사조직, 지역주의가 중요한 정치행위를 결정하는 데 더 큰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이념적 동질성이나 정책의 합리성에 따라 정당이 조직되고 선거에서 유권자의 지지가 표현되지만, 한국에서는 이념이나 정책이 거의 중요한 정치적 변수로 작용하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제14대 대통령 선거에서 김영삼 후보는 자신의 출신지인 부산에서 72.6%, 경남 71.5%, 경북 63.6%의 지지를 얻었고, 김대중 후보는 광주에서 95.1%, 전남 91.1%, 전북 88.0%의 지지를 얻는 등 지역주의적 투표성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난 반면, 두 후보의 정책적 차별성은 크게 부각되지 않았다. 또한 정당활동에서도 정책이나 이념의 동질성보다도 혈연, 지연, 학연과 같은 연줄을 기반으로 인맥과 파벌이 형성되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어 1988년의 제13대 총선에서 당선된 민정당 국회의원 중 박준규, 김윤환, 박철언 등 무려 15명이 노태우의 출신고교인 경북고등학교 동창생들이었다. 한국정치에서 인맥과 지역주의는 매우 중요한 정치행태 가운데 하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까지 한국정치 연구자들은 이 문제에 큰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였다. 기존의 연구들은 투표행태와 선거결과에 관한 분석, 선거운동의 구체적 과정과 실태에 관한 분석, 선거문화와 유권자의 정치의식에 관한 분석, 정당과 의회의 정책기능에 관한 분석 등 주로 정책적 측면의 연구에 치중되었다. 그런데 많은 연구자들이 직면하는 딜레마는 미국이나 유럽과 달리 한국에서는 각종 선거나 정당활동에서 정책적 요인이 거의 비중을 차지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에서는 오히려 인맥과 지역주의와 같은 비정책적 요인들이 더 큰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이 글은 정책적 측면보다 주로 비정책적 측면에서 1980년대 한국정치의 인맥과 사조직을 분석하고자 한다.

2. 1980년대 주요 정치인맥top

(1) 전두환의 '하나회' 인맥top

1980년대 전반기의 한국정치를 좌지우지한 정치인맥은 전두환의 하나회 인맥이다. 전두환, 노태우, 김복동, 정호용 등 육사 11기생들이 주축이 되어 1963년에 결성한 군 내 비밀사조직인 '하나회'(一心會)는 이후 제5공화국 창출의 모태가 됨으로써 현대 한국정치사에서 특별한 역할을 하였다. 물론 박정희도 5.16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이후 군 출신의 김종필, 차지철, 박종규 등을 등용하였지만, 그것은 개인적 친분에 의한 것이었지 하나회와 같이 수십년간 유지되어온 조직적 관계에 의한 것은 아니었다. 하나회의 뿌리는 전두환이 육사생도 시절에 결성한 오성회(五星會)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성회는 전두환, 노태우, 김복동, 최성택, 백운택의 다섯 사람이 장래 장군이 되기를 꿈꾸며 만든 20세 청년들의 친목써클이었다. 그후 오성회는 정호용 등 5인이 더 가입하여 텐 멤버(ten member)로 발전하고, 이들 10명이 주축이 되어 육사 11기에서 20기까지 매기수별로 10명씩을 엄격한 기준에 따라 선별하여 총100여명을 망라한 하나회로 발전하였다. 하나회는 단순한 친목단체일 뿐이라는 관련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하나회 소속 장교들은 입회시 엄격한 심사를 거쳐야 했으며 목숨을 걸고 조직의 명령에 따르며 절대 비밀을 지킬 것을 서약하였다고 한다. 하나회 소속 장교들은 이른바 '하나회식 의리'를 바탕으로 후견인-수혜자 관계를 형성하고 승진과 보직 등에서 서로 밀고 당겨 주면서 군 요직으로 진출하였다. 하나회가 군부 내에서 급격히 세력을 확장할 수 있었던 것은 박정희 대통령의 후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박정희는 육사 8기인 김종필이 군부 내에서 충청도 출신 장교들로 세력을 확장하자 이를 견제할 목적으로 육사 11기인 전두환, 노태우 등을 불러 경상도 출신 장교들의 단합을 호소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나회는 1973년 '윤필용 사건'으로 소속 장교들이 일부 구속되는 등 시련을 겪었지만, 하나회의 회장이었던 전두환 등이 박정희의 배려를 받아 예편을 면했기 때문에 1979년까지 비밀리에 조직의 명맥을 이어올 수 있었다.

1979년 12.12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이후 하나회 출신 인사들은 대거 정계로 진출하여 정치인맥을 형성하고 권력의 요직을 차지하였다. 1980년 5월 27일 광주항쟁을 폭력적으로 진압한 신군부는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약칭 국보위)를 설치하고 과거 유신체제하의 정치세력과 김대중, 김영삼, 김종필의 이른바 '3김 세력'을 대대적으로 숙청하기 시작했다. 국보위는 유신치하 권력의 핵심이었던 중앙정보부의 기구를 축소하고 요원 3백명을 숙청했으며, 2급 이상 공무원 2백 34명, 3급 이하 공무원 5천 237명, 정부산하단체 및 국영기업체 임원 1백 76명 등을 숙청했다. 이러한 숙청작업은 군부, 경찰, 법조계, 정계, 언론계, 학계 등 사회 각 분야에서 광범위하게 진행되었다.

제4공화국이 제5공화국으로 넘어가는 정권교체의 과정은 박정희 인맥이 전두환의 하나회 인맥으로 교체되는 인맥교체의 과정이기도 했다. 1980년 8월 16일 최규하 대통령이 사임하고, 8월 27일 전두환 국보위 상임위원장이 간접선거를 통해 대통령에 당선된 뒤 하나회를 중심으로 한 신군부 세력은 사회 각 분야에서 요직을 장악했다. 특히 정보기관, 국방부, 육군참모총장, 검찰 등 권력의 핵심부에는 대부분 하나회의 영향력 아래 있는 군 출신 인사들이 등용되었다.

[ 하나회 출신의 주요 인사들 ]
육사11기 전두환(12대 대통령), 노태우(13대 대통령), 김복동(전 민자당 의원, 국민당 입당), 정호용(전 무소속 의원, 민자당 입당), 손영길(전 수경사 참모장), 권익현(민자당 의원), 노정기(전 필리핀 대사), 최성택(전 석유개발공사 사장), 백운택, 박갑용
육사12기 박희도(전 육군참모총장), 박준병(민자당 의원), 박세직(민자당 의원), 안필용, 정동철(산업안전공단 이사장)
육사13기 최세창(국방부 장관), 김우재(전 체신부 장관), 오한구(민자당 의원), 신재기(민자당 의원), 정동호(민자당 의원)
육사14기 이종구(전 국방부 장관), 안무혁(전 안기부장, 민자당 의원), 이춘구(민자당 의원), 배명국(민자당 의원), 박정기(전 한국전력사장), 장기하(진로사장), 정도영(전 사회정화위원)
육사15기 고명승(전 3군사령관), 민병돈(전 육사교장), 이진삼(체육청소년부 장관), 김상구(민자당 의원, 전두환 전 대통령의 동서)
육사16기 장세동(전 안기부장), 신말업(전 군사령관), 최평욱(산림청장), 정순덕(민자당 의원)
육사17기 김진영(육군참모총장), 안현태(전 경호실장), 허화평, 허삼수(민자당 의원)
육사18기 이학봉(13대 민자당 의원), 정봉화(윤필용 전 수경사령관의 비서실장)


제5공화국은 군부독재라고 비판받아 왔다. 정권의 요직을 육사 출신의 군인들이 장악했다는 점에서 제5공화국은 군사정권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좁은 의미에서 보면 제5공화국은 군부 중에서도 '하나회'라는 특정 비밀사조직에 기반을 둔 정권이라고 할 수 있다. 같은 군 출신이면서도 하나회 회원이 아니었던 이종찬(육사 16기)은 민정당 창당의 주역을 담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이후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하나회 인사들로부터 끊임없이 견제를 당해야 했다. 하나회 인사들은 1988년 5공청산의 국민적 요구에 밀려 전두환(백담사), 정호용(외유), 장세동(구속) 등 커다란 정치적 타격을 입었다.

그러나 하나회 인맥은 제6공화국에서도 노태우 대통령을 배출하는 등 정치세력을 유지해 왔다. 또한 강창성(前 보안사령관)의 증언에 따르면, 하나회 인맥은 군 내부에서도 하나회(육사 11기-20기), 만나회(21기-32기), 알자회(33기-43기)로 여전히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고 한다. 제5공화국 창건의 주역을 담당한 하나회 인맥은 1980년대 전후반에 걸쳐 한국정치에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또한 문민정권이 출범한 1993년 현재까지도 현역 국회의원 중 10여명이 존재하는 등 하나회 인맥은 무시할 수 없는 정치세력으로 남아 있다.

(2) 노태우의 'T. K. 인맥'top

1980년대 후반기의 한국정치를 좌지우지한 정치인맥은 노태우의 T. K. 인맥이다. 노태우는 1987년 6.29선언으로 여권 내에서 주도권을 장악한 이후 전두환의 5공인맥을 제거하고 자신의 출신고교인 경북고 동창생들을 중심으로 'T. K. 인맥'을 형성하기 시작하였다. 노태우가 한때 자신이 속했었고, 대통령 선거에서도 자신을 지원해 준 5공인맥을 제거하기로 결심한 것은, 정권이 바뀌면 정치인맥도 바뀐다는 일반적 이유 이외에도 당시 여소야대의 국면 속에서 5공비리 청산과 민주개혁에 대한 국민적 요구가 높았기 때문에 제5공화국과 제6공화국의 차이점을 확실히 부각시킬 필요가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1988년 국회청문회에서 6공화국의 수뇌부와도 관련이 있는 광주문제보다도 5공비리문제가 더 크게 부각된 점이나, 5공비리 중에서도 군 출신 인사들의 부정부패보다도 주로 전두환의 친인척과 관련된 사건들이 집중적으로 거론된 점에 비추어 볼 때, 당시의 5공청산문제는 결과적으로 전두환의 정치인맥을 약화시키고 노태우의 6공인맥을 확립시키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따라 전두환-이순자 부부의 친인척인 전기환(전두환의 형, 노량진수산시장 강제인수 관련, 징역 4년), 전경환(동생, 새마을비리사건 관련, 징역 7년), 이규승(처삼촌, 삼호그룹 은행부채유예 관련, 징역 2년) 등이 사법처리된 반면, 노태우와 같은 경북고 출신의 이원조(부실기업정리와 정치자금모금 관련 혐의), 김만기(삼청교육대와 공무원 숙청의 실무책임자) 등은 사법처리를 면할 수 있었다.

넓은 의미에서 T. K. 인맥은 대구-경북 출신의 인사들을 포괄적으로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기도 한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T. K. 인맥은 노태우 대통령의 출신고교인 대구 경북고등학교 출신 인사들을 중심으로 형성된 정치인맥이라고 보아야 한다. 박정희나 전두환도 경상도 출신 인사들을 중용하였지만, 엄밀히 보면 경상도 출신이라는 점보다도 군 출신이라는 점에 더 큰 비중을 두었다. 이런 점에서 박정희 정권과 전두환 정권은 대구-경북정권(T. K. 정권)이라기보다 군사정권이라는 규정이 더 정확하다고 하겠다. 반면 노태우는 6공화국이 군부독재가 아니라 6.29선언과 직선제를 거쳐 탄생된 정통성 있는 정권이라는 점을 부각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군 출신 인사들을 배제하고 민간인 중에서 주요 인사들을 발탁하였다. 노태우는 민간인 중에서도 자신의 출신고교인 경북고 동창생들을 중심으로 6공화국의 정치엘리트를 구성함으로써 이른바 '경북고 인맥'을 형성하였다. 1988년 4.26총선에서 반(反) T. K. 여론이 형성되자 노태우는 12월 당정개편에서 비(非)하나회 인사인 강영훈(전 국무총리), 김재순(전 국회의장), 서영훈(KBS 사장), 장덕진(전 농수산부 장관), 홍성철(전 대통령 비서실장) 등 이른바 '신원로(新元老) 그룹'을 대거 발탁하였다. 그러나 이들은 대부분 이북 출신들로서 반 T. K. 여론을 잠재울 수 있으면서도 이남에 지역적 기반이 없기 때문에 쉽사리 정치세력화하기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었다. 그후로도 몇 번의 개각이나 당직개편 등에서 비 T. K. 인사들이 요직에 등용되었지만 대부분 '전시용'에 불과했고 실질적 권한은 경북고 인맥을 중심으로 하는 T. K. 세력에게 있었다.

[ 경북고 출신의 주요 인사들 ]
25기 박준규(국회의장)
32기 노태우(제13대 대통령), 김윤환(전 민자당 사무총장), 정소영(전 농수산부 장관), 정춘택(전 산업은행 총재), 정호용(전 내무부 장관)
33기 박우병(국회의원), 서동권(전 안기부장)
34기 김만제(전 경제기획원 장관), 김우현(전 치안본부장), 박희도(전 육군참모총장), 이영창(전 치안본부장), 최세창(전 국방부 장관)
35기 권병식(전 수도방위사령관), 오한구(전 국회의원), 이종구(전 육군참모총장)
37기 문희갑(전 국회의원), 정해창(전 법무부 장관)
38기 서영택(전 국세청장)
39기 사공일(전 재무부 장관)
40기 서완수(전 특전사령관)
41기 박철언(전 정무1장관)


3. 1990년대 새로운 정치인맥의 형성top

1992년 대통령 선거를 계기로 한국정치에서 군사정권은 막을 내렸다. 새롭게 출범한 김영삼 정권은 과거 5, 6공화국의 정치인맥을 해체하고 새로운 인사들로 문민정부를 구성할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로 김영삼은 최근 청와대 비서실과 장차관급 임명과정에서 주요 직책에 대해 '군 출신 인사 배제 원칙'을 세운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심지어 김영삼 대통령은 지난 3월 18일 임기가 9개월이나 남은 하나회 출신의 김진영 육군참모총장과 서완수 기무사령관을 군 통수권 확립 차원에서 전격 경질하고, 그 후임에 비(非)하나회 출신의 김동진(육사 17기), 김동윤(육사 22기)를 각각 임명함으로써 군 내 하나회 인맥을 뿌리뽑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내비쳤다. 또한 김영삼 대통령은 새 정부의 각료구성에서 경북고 출신의 비율을 보통 수준으로 낮추었다. 새 정부의 장차관급 인사 45명의 출신고를 살펴보면, 경기고 9명, 경북고 3명, 부산고 3명, 청주고 3명, 기타 각 1-2명 등으로 비교적 고른 분포를 보이고 있다. 정권이 바뀌면 인맥도 바뀐다는 평범한 정치상식에 맞게 5, 6공화국의 하나회 인맥과 T. K. 인맥은 쇠퇴하고 김영삼의 사조직인 '민주산악회'와 '나라사랑실천운동본부'에서 핵심적 역할을 했던 최형우, 김덕룡, 박관용 등을 중심으로 한 김영삼 인맥이 형성되고 있다.

정치분야에서 인맥과 사조직이 없을 수 없다. 인맥과 사조직은 공식적인 정당조직 안에서는 해결할 수 없는 많은 문제들을 비공식적인 경로를 통해 손쉽게 해결할 수 있도록 해 주며, 급격한 정치변동에도 크게 영향을 받지 않고 인간적 관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해 준다. 따라서 정치인맥과 사조직은 공식적 정당조직을 보완하는 역할을 한다. 또한 정치인맥과 사조직은 '정치인-정치인' 또는 '정치인-유권자'의 유대관계를 공고한 것으로 만들어 줌으로써 안정된 정치공동체의 형성에 이바지할 수 있다. 그러나 정치인맥과 사조직은 지역주의를 심화시키고 부정부패를 낳는 구조적 요인으로 작용하는 등 부정적 측면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정치인맥과 사조직의 긍정적 측면은 조장하고 부정적 측면은 억제함으로써 바람직한 정치공동체의 건설을 지향하는 지혜와 결단이 요구된다고 하겠다.

◀ 이전 | 차례 | 다음 ▶